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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운, 없으면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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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요즘 놀이동산에선 시간을 살 수 있다. 얼마 전 ‘사파리 열차’ 줄에 서 있었다. “두 명에 3만원이면 3D 사진 찍어 드립니다.” 무슨 말인가 봤더니 사진은 요점이 아니었다. 3만원짜리 티켓을 사면 긴 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진이야 잠깐 찍고 가는 것이었다. 안 찍어도 된다. 대신 기다리지 않고 사파리 열차를 탈 수 있었다. 3만원은 ‘급행료’다.

 원래 대기 예상 시간은 100분. 두 명이니 200분에, 그동안 바닥 날 체력과 인내심까지 3만원에 살 수 있다. 돈을 내면 천국이다. 꽉 막힌 옆 줄을 버스전용차로에서 마냥 훑어보며 사파리 열차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 5분만 기다리면 열차에 올라탄다.

 3만원은 애교였다. 최근 더 거대한 급행료를 발견했다. 보육 급행료다. 나는 지금 아이와 함께 긴 줄에 서 있다. 어린이집 대기 줄이다. 동네의 국공립 어린이집은 진작 포기했다. 정원 37명에 대기자만 366명이다. 벼락 같은 행운은 기대하지 않는 게 바른 태도라는 걸 나는 배우며 컸다.

 민간 어린이집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임신했을 때부터 대기신청을 했지만 연락을 받지 못했다. 정원보다 두세 배 되는 아이들이 언제나 대기 중이고, 우리의 순위는 뒤에서부터 세는 편이 늘 빠르다.

 그래서 알아본 곳이 ‘놀이학교’다. 별도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아이를 돌봐주는 곳이다. 어린이집이 학교라면 일종의 ‘학원’ 개념이다. 그런데 이곳이야말로 사파리 열차로 가는 급행 노선이다. 정원 8명인 반에 지금 두 명이 다니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도 한 반에 두 명이다. 기다리지 않고 내일이라도 보낼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일반 어린이집의 서너 배다.

 지나친 교육비 지출은 내 육아 철학과 맞지 않는다. 놀이학교에 보내면 정부의 보육료 지원금도 받지 못하니 더 억울할 게다. 그래도 어린이집의 대기 순번,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으면 내 아이는 언젠가 놀이학교에 가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고 혼자 친구도 없이 집에서만 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내 운이 정말 좋다면 내가 대기신청 해놓은 곳 중 좋은 어린이집에 갑자기 결원이 많이 생길 것이다. 아이들이 갑자기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다든지, 더 좋은 어린이집에 당첨돼 옮겨간다든지 말이다. 그런 놀라운 행운이 없는 한 나는 언젠가 돈을 써야 할 것이다.

 놀이동산에서 나는 시간을 돈으로 사는 현장을 목격해 놀라웠다. 그러나 더 희한한 일도 많다. 운이 없으면 돈을 써야 한다. 앞으로 놀라운 계산법을 얼마나 더 배워야 아이를 다 키우게 될까.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