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위조 달러' 한·미 이견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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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전문가가 정교하게 위조된 100달러짜리를 감식하고 있다. 미국은 16일 북한이 1989년부터 '수퍼노트'라고 불리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5000만 달러 이상 제조, 유통시켜 왔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북한의 달러 위조 혐의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정부의 시각차가 갈수록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0일 워싱턴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북한의 지폐 위조 문제에 대해) 미국은 불법 활동에 대한 법 집행 차원에서 조치하는 것일 뿐"이라며 위폐 문제는 협상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무부의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담당 차관보도 이날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내 눈으로 북한이 만든 100달러짜리 위폐를 확인했다"며 "우리는 증거를 갖고 있고, (한국)외교관들에게 다 브리핑했으니 직접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는 "미 정부는 미국 화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고, 어떤 나라든 자국 화폐가 위조된다면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미 재무부는 16일 한.중.일 3국과 동남아 국가,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40개국 대표를 초청해 북한의 위폐 제조 의혹에 대해 브리핑했다.

이 자리에서 재무부는 북한의 화폐 제조용 특수 잉크와 용지 구입 실태, 북한 입금 계좌에서 발견된 위폐의 액수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미국이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며 "브리핑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북한 외교관이 위폐를 갖고 있다가 검거됐다거나 특수 잉크를 구입했다는 것 등은 정황 증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 관계자는 20일 "한국은 북한의 변호사 역할을 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비난, 미 정부가 위폐 문제를 다루는 한국 측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음을 내비쳤다.

주미 대사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본국(한국) 정부에서는 우리까지 북한의 위폐 혐의를 인정할 경우 6자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그러나 미국이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어 중간에 끼어 있는 주미 대사관이 처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21일 내외신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 위폐 문제와 관련해 긴밀한 정보 교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약.위폐 등 초국가적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할 의무를 갖고 있다"며 "북한이 위폐를 만든 게 확실하다면 분명한 불법행위이고,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아직'북한이 위폐를 만들었다'고 단정할 만큼 정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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