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분열 못 막은 문재인 … 선거 패배 책임론 휩싸일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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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9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재·보선 국회의원 선거구 4곳 중 한 곳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최승식 기자]

설마 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 29일 새정치민주연합은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밤 국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시내 모처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다 패배가 유력해지자 구기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측근들은 “지금은 문 대표가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많지 않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회에 남은 당직자들은 “단 한 석만이라도…”라고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는 기대를 외면했다. 유은혜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경고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송구하다. 국민이 바라는 바를 깊이 성찰하겠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선거 결과가 대통령 측근의 부정부패를 덮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표는 취임 80일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대선가도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야권 분열로 패배는 예고됐다. 그래서 문 대표도 처음엔 “승패보다는 수권 정당의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선거가 돼야 한다”는 각오였다. 선거전 중반 ‘성완종 리스트’라는 돌출 변수가 판을 흔들며 “혹시나”하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이 기대감은 결과적으로 패배의 고통만 더 크게 만들었다.

 패배 책임론에 몰린 문 대표 측은 ‘문 대표의 책임이 아닌 구조적 패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핵심 참모는 “문 대표는 야권 분열, 당내 공천 불복 세력, 새누리당이라는 세 가지 적과 맞서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모는 “문재인과 새정치연합이 진 게 아니라 (분열한) 야권의 패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내 비노무현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한 비주류 의원은 “공천부터 선거전 고비고비마다 미숙한 정국 관리로 문 대표가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공천의 경우 문 대표는 ‘공정’을 명분으로 부담이 덜한 경선 방식을 선택했다. 결과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지더라도 후보의 경쟁력을 판단해 지도부가 경선 없이 결정하는 ‘전략공천’을 해야 했으나 그걸 포기하는 바람에 결국 천정배 당선인의 탈당을 불렀고, 광주 서을에서의 더블스코어 참패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노무현 정부의 특별사면 논란으로 옮겨붙은 것도 논란거리다. 새누리당의 공세가 집요하기도 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사면임에도 문 대표가 유감 표명 한 번 없이 “사면은 법무부 소관”이라는 주장을 펴다 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문 대표가 잃은 것은 또 있다. ‘유능한 안보 경제 정당’을 외쳤던 중도 우클릭 행보가 선거 막판 여야의 지지층 결집 과정에서 묻혀버렸다. 문 대표 주변에선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 ‘문재인도 별수 없다’는 회의론이 퍼지는 게 두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장 30일부터 새정치연합은 참패의 책임론을 둘러싼 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문 대표는 30일 오전 10시 선거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하지만 문재인 체제 80일 동안 숨을 죽여온 당내 비주류의 화살이 문 대표를 향해 날아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문 대표의 사퇴를 곧바로 겨눌지, 친노계 우위의 당내 역학구도를 무너뜨리는 데 맞춰질지 아직 수위를 가늠키는 어렵다. 첫 시험대에서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 든 문 대표가 리더십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30일부터 그가 내놓을 메시지와 동선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게 됐다.

글=서승욱·정종문 기자 sswook@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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