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주당은 무슨 낯짝이당가” “당 버린 천정배는 좀 그라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4호 07면

광주=프리랜서 오종찬

#. “천정배는 장관인디 조영택이는 국무조정실장인가밖에 안 혀지 않았나.”

[4·29 재·보선 D-3] 광주 서을 르포

 조영택 새정치연합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느라 그 튼튼하던 목이 다 쉴 지경인 이광중(69) 유세본부장은 요즘 유권자들로부터 이 소리만 들으면 마음이 답답하다. ‘큰 인물’을 내세운 상대 후보에게 제1야당의 후보가 영영 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조 후보의 이력을 설명하노라면 “자네 모르는 소리네. 그래도 실력 있는 사람(천정배) 뽑아야제”란 반응이 돌아오기 일쑤다.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이 무슨 부장쯤 되는 줄 알어, 내참 답답혀서….”

 이 본부장은 35년째 ‘민주당(새정치연합)’ 당원이다. 목청 좋고 입담이 좋아 선거 때마다 유세에 불려 다녔다. 하지만 그에게 이번 선거는 사상 최대의 시련이다. “예전엔 선거만 하문 당선은 떼어 논 당상이었는디 천정배가 날 이리 힘들게 맹글어 부렀어. 맘이 급해서 자투리 시간에 쉬지도 못하고 양로원을 돌고 있어.”

 지난 23일 오후 3시 광주광역시 서을의 한 양로원에서 만난 이 본부장은 연신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방안을 가득 메운 할머니들에게 모자를 벗고 대머리인 정수리를 드러내며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앞모습은 40대, (뒤로 돌며) 뒤꼭지는 20대, 벗으면 70대여~.” 할머니들이 폭소를 터트리며 배를 잡고 뒤집어지자 이 본부장은 잊지 않고 다음 말을 붙였다. “내일부터 사전투푠께 우리 후보 꼭 좀 부탁허요. 조∼영∼택∼이요. 달력에 날짜도 표시해 놨응께 꼭 투표해부쇼잉~.”

 오후 4시 선거사무실에 도착하자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광주시장 후보 전략공천에 반발해 새정치연합을 탈당했던 이용섭 전 의원이 이날 조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지원에 나선 것이다. 마침 선거 지원차 이곳을 들른 주승용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이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구청장들을 모아 놓고 단단히 단속을 했습니다. ‘이건 조영택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새정치연합)의 싸움이다’라고 말입니다….”

 오후 5시 풍금사거리에서 열린 집중 유세엔 권노갑·김옥두·임채정 등 내로라하는 당 원로들이 총출동했다. 거리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분위기가 전보다 뜬 것 같어. 급조된 유세였는데도 사람도 많이 모이고 경청을 하더만.” 다소 얼굴이 환해진 이 본부장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골수 야당 지지자들의 막판 세 결집이 이번에도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듯한 모습이었다.

“30년째 민주당 … 이번엔 바꿔야제”
#. “30년째 민주당만 찍어분께 그놈이 그놈이여라. 이번에는 바꿔야 헙니다잉~.”

 24일 오후 6시30분 풍암 호수변 거리 유세 현장에 선 천정배 캠프의 이동춘(52) 선대본부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아문, 인제는 바꿔야제” “지역민 무시하는 당은 안 되제”란 호응이 쏟아졌다. 반면 맞은편 길거리에서 지켜보던 한 노신사는 “천정배란 인물은 나도 좋아허요… 근디 당을 버리고 나왔다는 것이 그라제”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본부장은 이번 선거로 인해 21년간 몸담았던 새정치연합과 등을 졌다. 광주 서구 구의원인 그는 지난 15일 동료 구의원 2명과 함께 천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했다. 탈당 기자회견도 열어보지 못한 채 졸지에 당에서 쫓겨난 이 본부장은 기자를 만나자 격한 목소리로 공천에 대한 불만부터 터트렸다. “당을 사랑했지만 해도 너무 헌 것 아니요. 새정치연합 옷만 입히면 당선된다고 다른 지역구서 공천 탈락한 사람헌티 공천 줄 수 있느냐 말이요.” 19대 총선 때 광주 서갑 공천에서 탈락했던 조 후보를 향한 공격이다. “삼 세 번 도전해 고생 끝에 구의원 겨우 됐는디 이번에 조영택이 서구갑에서 자기 사람들을 델고 온다고 하잖소.” 국회의원 공천 파문이 풀뿌리 정치까지 흔들어 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본부장은 요즘 하루 5시간만 자며 거리에서 발품을 팔고 있다. “분위기가 무척 우호적입니다. 다들 이번엔 당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뽑겠다고 합디다.”

 지난 총선 당시 새정치연합이 통합진보당 오병윤 후보로 단일화했다가 통진당 해산으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점도 천 후보 측엔 호재다. 금호동 유세 현장에서 만난 조점례(78) 할머니는 “오병윤이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의원 맹글어 줬더니 날려 묵었잖소. 근디 무슨 낯짝으로 민주당(새정치연합)이 후보를 내놓는디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동안 여론조사에서는 천 후보가 7~10%포인트 차로 조 후보를 따돌려 승리를 확신해 왔던 천 후보 캠프에 최근 비상이 걸렸다. 23일 발표된 여론조사(리얼미터 조사)에서 37.9% 대 36.2%로 조 후보가 턱밑까지 추격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그쪽(새정치연합)이 조직을 총동원하기 시작하는구먼요.” 이 본부장은 “이제는 유권자들을 죽기 살기식으로 저인망으로 훑는 길밖에 없다”며 문을 나섰다. 이날 오후 내내 인근 식당가를 돌며 밑바닥 표심에 호소했다. 주방까지 찾아 들어가 악수를 나누자 “아이고 다른 쪽 사람들은 여그까정 들어오지는 않는디”라며 주방 아주머니들이 반가워했다. 식당을 나서는 그의 얼굴엔 ‘지역 민심은 우리 편’이라고 믿는 표정이 가득했다.

 #. 24일 오후 1시 회재로에 자리 잡은 정승 새누리당 후보 선거사무실.

 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는 ‘아줌마 부대’ 자원봉사자로 나선 박지현(46)·유은주(43)씨는 오늘도 선거운동 준비에 한창이다. 빨간 유니폼의 동료 여성 자원봉사자 10여 명과 함께 “필승 정승” 구호를 외친 후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중앙공원 산책로를 훑으며 두 사람이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정승 후보 한 표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사람들은 손을 흔들거나 무심히 지나갔고, 간혹 싸늘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보였다. “우리도 예전에 자원봉사자와 마주치면 무시하고 짜증도 냈어요. 입장을 바꿔보니 많은 걸 배우게 되네요.”(박)

 공원 정자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쉬고 있던 할머니들을 만나자 “이번엔 한번 바꿔 주세요”라고 호소한다. 한 할머니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함 바꿀 때가 되얏제. 근데 1번이 똑똑해도 막상 투표장 가면 나도 모르게 2번에 손이 가데. (바꾸기가) 쉽진 않을 거여”라고 말했다.

 전업 주부인 두 사람 모두 그동안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었다. 캠프 운동원 대부분이 새누리당원이 아니라 알음알음으로 소개를 받아 모집된 사람들이다.

 “예전엔 부모님 말씀만 듣고 1번은 정말 안 찍었던 거 같아요.”(박) “처음에 자원봉사 하겠다고 했을 때 ‘왜 하필 거기(새누리당)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유)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이완구 총리의 사퇴 정국 등이 이어지자 걱정도 많았다. ‘밖에 나가면 계란 맞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봉사자들 사이에 돌았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예전에 욕을 먹으며 ‘경상도로 가라’는 소리까지 들었대요. 그런데 막상 나가니까 다들 ‘고생한다’며 따뜻하게 대해 주시더라고요.”(유)

 간혹 행인으로부터 “넌 광주 사람 아니냐”란 비난도 듣기도 한단다. 그럼에도 캠프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여당 후보 지지율이 10% 근처라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에요. 지난해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순천-곡성 보선에 당선되고 나서 그 동네 전체가 공사판이 될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요….”(유)

 두 사람의 소원이라면 이런 작은 노력이 조금이나마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것이다. “진짜 광주에서도 새누리당 의원이 나오고 경상도에서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나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박·유)

새누리당 10%대 지지도 주목할 만
#. “독점하면 부패합니다. 누가 더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지 여러분이 선택해 주십시오~.”

 24일 저녁 7시 내방동 KIA자동차 광주 제2공장 정문 앞에서 강은미 후보 지원에 나선 천호선 정의당 대표가 목청을 높였다. 노란 점퍼 차림의 문정은(29) 당 부대표가 연설 트럭 옆에서 음악에 맞춰 부지런히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부대표지만 캠프 공보담당 겸 대변인이자 현장 운동원까지 맡고 있다. 상가 건물 옥상 가건물에 마련된 선거 캠프에서 밥을 먹고 하루 서너 시간 쪽잠을 잔다. “시간도 없고 인력도 없고… 한 사람이 여러 명 몫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네요.”

 문 부대표는 KIA차 노조위원장 출신인 조남일 무소속 후보가 전날 사퇴한 것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날 현장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퇴근하던 노동자 중 멈춰서 유세에 귀를 기울인 이가 선거 운동원보다 적었다. 23일 저녁 풍금사거리 유세 땐 한 시민이 다가와 “단일화해서 천정배 도와줘야지 니들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여. 사퇴하는 게 맞아”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대 반(反)새정치연합 구도 형성을 노렸는데 천 후보가 새정치연합 심판론을 선점해 버려서 우리가 힘들어졌어요.” 천정배의 출마 선언이 정의당이 선전하기 어렵게 만든 악재라는 게 문 부대표의 분석이다.

 성공회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문 부대표는 지난해 광주 광산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권은희 새정치연합 후보에 맞서 3.77%를 득표했다. “내년 총선에서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가 될 수 있도록 이번 보선에서 선전하는 게 목표예요.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기탁금을 돌려받을 만큼 선거 결과가 나오면 좋겠네요.” 당원들이 갹출해 모은 기탁금 1500만원 전액을 돌려받으려면 이번 선거에서 15% 이상(반액은 10~15%) 표를 얻어야 한다.

광주=이충형 기자, 나은섭 인턴기자 adch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