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有度<유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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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27면

당파를 근거로 관리를 임용하면 재능있는 자를 잃게 되고, 나라는 어지러워진다. 자기 패거리에 속한 사람만을 등용한다면, 관리들은 나라 이익은 돌보지 않고 사사로운 교류에만 신경쓴다. 패거리의 우두머리는 교류가 넓고 따르는 자가 많아 조정 안팎으로 여러 단체를 조직한다. 비록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죄를 은폐해 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통치자에 대한 충성도는 낮아진다.

그런 까닭에 충직한 관리는 죄가 없는데도 위태로워지거나 불이익을 당한다. 간사하고 사악한 관리나 정치인들은 공이 없어도 편안함을 누리게 되니, 어진 관리들은 몸을 낮추고 은둔한다. 공이 없는데도 편안함을 누리고, 간사한 자들이 등용된다면 이것이 곧 나라가 망하는 근원이다.

관리들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세도가에 줄을 대려고 번질나게 드나들지만 나라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벼슬아치 수가 비록 많더라도 군주를 존경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며, 온갖 공직이 갖춰져 있더라도 나라 일을 진정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망하려는 나라 조정에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의 수가 줄었다는 뜻이 아니다. 권세가들이 서로 자기 집안의 이익만을 꾀할 뿐, 나라의 부(富)를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있는 자들은 제 사람 챙기기에만 급급할 뿐 나라 일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하급 관리들은 봉록만 받고 줄대기에만 힘쓸 뿐 관청의 일은 나 몰라라 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통치자는 법도에 따라 사람을 선택하지 자기 멋대로 등용하지 않으며, 법으로 공적을 헤아리지 주관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재능 있는 자가 가려진 채로 있을 수 없게 하고(能者不可弊) 죄가 있는 자는 죄를 은폐하지 못하게 하며(敗者不可飾) 이름이 높다는 것만으로 임용하지는 말아야 한다(譽者不能進). 이는 통치자가 법도를 바로 시행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법가(法家)를 완성한 한비자(韓非子)가 쓴 『한비자』 유도(有度)편에 나오는 글귀다. 군주를 통치자로 바꿨을 뿐 거의 직역했다. 유도란 법도가 있다는 뜻이다.한비자가 2250년 후의 한국 정치를 묘사하며 꾸짖는 듯하지 않나.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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