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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관리의 꿈' 빌딩①] 빌딩 오너, 그들은 누구인가…빌딩 부자 '강남 사는 50대 초반 여성'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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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이코노미스트] 지난해 빌딩 거래 734건 분석 … 공동투자 많고 20~30대 매수자 급증

부자 대열로 진입하는 ‘마지막 열차’ 빌딩 매매. 저금리에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투자 환경 속에 빌딩 투자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그러나 워낙 고가인데다, 대중적인 투자처가 아니기 때문에 접근 방법과 매물 고르는 법, 세제 등 어느 것 할 것 없이 낯설다. 본지가 빌딩 투자에 도움을 주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한 배경이다. 첫 편에서는 빌딩을 보유한 사람들의 거래 내역을 중심으로 빌딩 오너는 누구인가를 다룬다. 앞으로 대기업·재벌 일가가 주로 투자하는 지역, 연예인들이 주로 투자하는 빌딩, 최근 빌딩 거래가 활발한 지역의 현황, 빌딩에 투자하는 방법과 세제 문제 등도 짚어본다.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소설가 김훈은 자신의 수필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제 목구멍과 처자식 건사하려면, 죽으나 사나 일터에서 허리 굽혀 일해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도 급여에서 매달 추렴한 돈을 모아 예·적금에 넣어 두고 주식에 투자하고 펀드에 쌓아둔다.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볕들 날 있겠지.”

하지만 결혼·육아·자녀 교육·노후 대비 등 목돈이 들어가는 일을 치르고 나면 주머니는 금세 텅텅 비어 버리기 십상이다. “만약 50억원이 생긴다면 어디에 쓸래?” 누군가 묻는다. 내집을 장만할까, 아니면 은행에 넣어둘까, 아니면 저평가 우량주에? 여러 대답이 나오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빌딩을 사겠다고 답할 것 같다. 내가 죽더라도 월급처럼 꼬박꼬박 돈이 나오고, 예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운이 좋다면 땅값이 올라 대박의 기회를 맞을지도 모른다.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해방구, 대한민국의 수많은 미생들이 꿈꾸는 재테크의 끝은 결국 빌딩일지 모른다.

한국에서 빌딩은 부동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수도권에 빌딩 한 채 갖고 있다고 주변에 말해 보라. 놀라움과 부러움, 동시에 시기심의 눈빛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시선에는 빌딩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치관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넌 이제 걱정할 것이 없겠구나.’ 부동산 임대업자가 꿈이 돼 버린 나라라는 비하도 있지만, 빌딩을 사는 일은 가장 합리적인 재테크 수단일 것이다.

하지만 빌딩 투자는 너무나도 먼길처럼 보인다. 연봉 5000만원의 직장인이 돈 한푼 안 쓰고 30년을 모아야 15억원을 쥘 수 있다. 빌딩에 가까이 가기에는 턱도 없다.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돈이다. 그러나 저금리 시대를 맞아 금융부채를 이용하거나, 공동 명의 구입, 경매 등 빌딩으로 통하는 경로는 여러 가지다. 돈이 없다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언제든, 누구든 재테크의 끝을 모색할 수 있으며 그럴 권리도 있다. 투자자들의 헛된 욕망을 자극하려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투자 환경 속에 빌딩 매매를 하나의 투자 대안으로 삼을 수 있고, 그 길은 한번쯤 검토해 봄직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간 임대사업자와 관련한 기사들이 제도적 관점에 그쳤던 것과는 달리, 본지는 지난해 실제 거래가 이뤄진 사례를 중심으로 매도 물건의 특징과 지역별 정리, 매수자들의 공통점을 다룰 예정이다. 1편에서는 실제 빌딩을 사들인 빌딩 오너들의 주된 매매 지역과 나이·성별·매매 지역별 동향 등을 분석해, 실수요자들의 이해와 접근을 도울 것이다. 2편에서는 삼성·현대·신세계·롯데·한화·CJ·효성 등 대기업 재벌가가 소유한 빌딩과 밀집 지역을 파헤쳐 빌딩 투자를 준비 중인 투자자들에게 투자 유망 지역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3편에서는 빌딩 매매의 ‘큰 손’인 연예인들의 빌딩 매매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빌딩 투자의 트렌드와 방향을 알릴 계획이다. 4편에서는 서울 시내 빌딩 매매 동향과 가격변화, 빌딩 유형별·지역별 정리, 투자자들의 동선 등을 분석해 본격적인 투자 준비 단계에 접어든 투자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5편에서는 사례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빌딩 매매의 주의점과 좋은 매물을 찾는 법, 지분 쪼개기와 세제 관련 팁 등 유용한 정보를 소개할 예정이다.

빌딩 오너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루 일과를 쇼핑으로 보내는 드라마 속 부잣집 사모님일까, 아니면 부모로부터 천문학적인 재산을 물려받은 젊은이일까. 아무리 많은 통계를 들여다 봐도 빌딩을 사들인 사람의 직업과 재산 규모, 하루 일과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매매 자료를 보면 분명한 점은 보인다. 주된 빌딩 매매가 서울 여의도 한복판이나 20~30층 규모의 대형 빌딩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사들인 사람이 모두 수백억원을 가진 재력가도 아니다. 지난해 거래된 빌딩의 평균 높이는 고작 4.83층이었고, 연면적은 336.98m²이었다. 평균 매매가는 52억7696만원. 빌딩을 산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31억8611만원의 대출을 받았으니 실제로 들어간 자기 돈은 20억원 남짓이다. 혼자서든, 여러 명이 힘을 합치든, 분명 빌딩은 접근 가능한 시장이다. 도널드 트럼프나 왕젠린 같은 부자들만이 빌딩 매매의 주인공은 아니다. 2015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빌딩 거래를 파헤쳐 지역별 특성과 사들인 사람들의 평균적인 모습은 어떤지,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이를 위해 본지는 지난 1년 동안 서울 지역에서 실제 잔금 납부까지 완료돼 거래가 성사된 734건의 빌딩 거래 매매 상세 내역을 입수해 분석했다. 자료 수집은 원빌딩부동산중개의 도움을 받았다.

지난해 빌딩을 구입한 이들 중에는 개인 자격으로 구입하거나 공동 투자해 빌딩을 구매한 사람이 법인 구매자보다 많았다. 총 734건의 거래 내역 중 개인 자격으로 구매한 거래건수는 모두 561건이었다. 여기에 법인과 개인이 공동으로 빌딩을 구매한 거래까지 더하면 76.8%가 개인 구매다. 다만, 이른바 강남3구 지역에 소재한 빌딩 거래 내역만 놓고 보면 법인소유주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강남구·서초구·송파구 등 강남3구 지역의 법인소유주 비율은 27.7%로, 다른 지역보다 약 10%포인트 안팎 높은 편이다. 강남3구 지역 빌딩의 가격이 높아, 개인투자보다는 법인투자가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빌딩 거래 내역 중 개인이 구매한 빌딩만 놓고 보니, 공동소유 거래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지난해 개인이 구매한 561건의 빌딩 중 매수자가 1명인 단독소유 거래는 총 204건(36.4%)로, 공동소유 빌딩(63.6%)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거래가가 비싼 강남3구에서 공동소유자가 많았다. 강남3구의 거래 매물 중 매수자가 2명 이상인 거래건수는 206건으로 강남3구에서 이뤄진 전체 거래의 88.4%를 차지했다. 이는 강남3구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매수자 2인 이상 거래 비율(46%)보다 무려 2배가량이나 높은 수치다.

서울 강남권에선 공동보유·갈아타기 수요 많아

서울지역에서 빌딩을 매입한 사람은 평균 50대 초중반이었다. 최저연령은 22세, 최고연령은 84세로 나타났다. 강남3구에서 빌딩을 구입한 사람의 평균연령은 51.4세로, 비강남 지역 빌딩 구매자(54.2세)보다 약 3세 정도 적었다. 오동협 원빌딩부동산 중개 이사는 “매수자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통상 강남지역에서 빌딩을 매수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며, “강남 빌딩주는 조금 작은 빌딩이라고 하더라도 3~5년 후 더 큰 빌딩으로 속칭 갈아타기 하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다른 지역보다 20~30대 부동산 투자자가 많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강남3구에서 빌딩을 구입한 빌딩 오너 중 20~30대인 투자자의 비중은 17.2%로, 강남 이외의 서울 지역에서 빌딩을 구매한 20~30대의 비중(8.6%)보다 높았다. 부동산 투자자의 명의는 여성이 많은 편이었다. 강남3구는 남성이 44%, 여성이 56%이며, 강남 이외의 지역 빌딩 거래를 살펴봐도 비율에는 큰 차이가 없다. 남성 44.6%, 여성 55.4%다. 다만, 명의는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부부가 상의해서 빌딩 투자 의사결정을 한다는 측면에서 성별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빌딩 오너들은 주로 어느 지역에 살까. 대부분 강남구 거주자였다. 법인거래를 제외한 개인이 매입한 빌딩 거래를 대상으로 매수자의 주소지를 분석했더니, 무려 83.5%가 서울에 살고 있었으며, 이 중 강남3구 거주민은 절반가량(46%)이었다. 이들의 거래 선호 지역은 역시 본인들이 살고 있는 강남3구다. 강남3구 빌딩 거래 328건 중 강남·서초·송파에 적을 두고 있는 빌딩 오너는 59.5%였다. 범위를 넓혀 생각해 봐도, 지난해 서울 전체 빌딩 오너의 38%가 강남구나 서초구, 혹은 서초구에 살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특히 강남3구 중에서도 강남구 거주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강남 3구에서 지난해 빌딩을 구입한 사람의 주소지는 강남구가 31.7%, 서초구가 18.3%, 송파구가 9.5%로 나란히 1~3위다. 강남구 거주자는 비강남 지역 빌딩 투자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3구가 아닌 서울 지역에 지난해 투자한 빌딩 오너 10명 중 1명(9.9%)의 주소지도 역시 강남구다. 서초구(6.9%) 거주민도 비강남 빌딩을 많이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비강남지역 빌딩 오너의 주소지는 마포구(7.1%)·종로구(5.2%)·광진구·서대문구·성동구·성북구·용산구(각 4.2%) 순으로 많았다.

올해 빌딩 매매 동향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유의미한 사례가 쌓여 통계적 가치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 분석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저금리 여파와 부동산 경기의 회생 조짐으로 올해 빌딩 매매 시장 동향을 미리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올해 빌딩 매매 시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흐름 중 하나는 매수자가 젊어졌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추고 노후에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한 40~50대 중·장년층의 매수세가 많았다. 그러나 저금리의 장기화 기조에 발맞춰 30대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빌딩 매매에 노크하고 있다.

오동협 원빌딩부동산 이사는 “의사·변호사 등 억대 연봉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금융부채를 끼고 빌딩을 사려는 움직임이 많다”며 “이들은 앞으로 20년 이상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어 이자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빌딩 금액이 오를 것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집 마련의 꿈? 빌딩 마련의 꿈!

지난해까지 강남에 집중됐던 매수세가 30대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홍대 인근으로 몰리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증가 등으로 홍대의 상권이 연남동 등지로 확대되고 있어 앞으로 투자가치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식당 등 영업이 필요한 경우는 입지를, 임대 등 고정 수입을 원하는 사람들은 가격을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3월에만 10억~20억대 소형 빌딩 매매를 문의하는 고객이 20~25명이나 됐으며, 적극적인 매수 의사를 내비친 고객도 5명 이상이었다”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김유경 · 문희철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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