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원들 "아베, 과거사 사과하는 기존 담화 계승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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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ㆍ민주당의 하원의원 25명이 23일(현지시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대해 과거사를 사과한 무라야마(村山)ㆍ고노(河野) 담화를 계승하라고 촉구했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과 마이크 혼다 의원 등 25명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명 서한을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일본대사에게 보냈다.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을 사흘 앞두고 전격적으로 전달된 서한에는 그간 한ㆍ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거리를 뒀던 공화당에서도 의원 8명이 참여해 민주당 소속 17명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6월 일본의 고노 담화 재검토 방침을 비판하는 서한에 서명했던 하원의원 18명보다 늘어난 숫자다.

의원들은 이날 서한에서 “우리는 아베 총리가 역사를 직시하며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공식적으로 재확인하고 인정하기를 촉구한다”로 밝혀 과거사를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 강제 동원을 사과한 93년 고노 담화를 직접 거론했다.

의원들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중대한 시점을 맞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ㆍ일본ㆍ한국의 협력 강화가 아시아ㆍ태평양 지역과 국제 사회의 평화ㆍ번영에 핵심 역할을 한다고 분명하게 믿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베 총리가 미국 방문을 통해 역사 문제를 다룸으로서 치유와 화해의 기초를 마련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서명에 참여한 의원들엔 로이스 위원장 외에도 공화당의 수석 원내 부총무를 지낸 피터 로스캄 의원, 민주당 선대위 의장을 역임했던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포함됐다.

임소정 워싱턴한인연합회장, 김동석 시민참여연대 상임이사 등은 “한인 유권자 단체들이 지역 내 주요 의원들을 상대로 행동에 나서도록 전방위로 주문했다”고 밝혔다. 다른 한인단체 인사는 “서명 작업은 혼다 의원 등의 주도로 보안 속에 진행됐으며 전날 14명에서 이날 25명으로 참여 의원이 늘었다"고 전했다.

연대 서한은 그간 침묵했던 미국 의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공개 연판장’으로 압박성 권고를 한 것이라 아베 총리에게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서명에 나선 의원들은 아베 총리가 들고 올 선물에도 불구하고 한미 관계와 한인 유권자들을 의식해 나름의 결단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는 국제사면위원회 워싱턴지부, 아태지역 2차세계대전만행희생자추모회, 대만 참전용사 워싱턴협회 등의 인사들이 참석해 아베 총리 방미 기간 중 연대 항의 집회에 나선다고 밝혔다.

미국 상이군인회(DAV)는 이날 2차대전 당시 미군 포로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던 일본 기업들이 이를 공식 인정하고 기록 보존에 나서도록 요구하는 서한을 존 베이너 하원의장실에 보냈다.

◇아베, 연설 영어 번역에 신경=아베 총리가 ‘역사 수정주의자’란 비판을 희석시키기 위해 연설의 영어 번역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2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에서 "앞선 대전(2차 대전)에 깊은 반성을 한다"고 연설했는데 일본 정부는 ‘깊은 반성’을 ‘deep remorse’로 번역했다. 후회나 자책의 의미가 담긴 ‘remorse’를 통해 ‘사죄’란 표현을 비켜간 것이다.

또 지난달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위안부와 관련, ‘인신 매매’란 말을 쓰고 이를 ‘trafficking’으로 번역해 군에 한정시키지 않고 강제 연행을 연상시키는 효과를 노렸다.

아베 총리의 영어 연설문 작성자인 다니구치 도모히코(谷口智彦) 내각관방 참여는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해 오는 29일 미 상·하원 합동 연설문 초안에 대한 미국 측 의향을 살피기도 했다.

워싱턴·도쿄=채병건·이정헌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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