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연세대교수·경제학>실감 못하는 "호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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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의 경기가 과열인가 아닌가를 놓고 빈번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경기종합지수나 GNP의 성장률을 보면 최근의 경기가 호황의 수준을 넘어서 과열의 기미까지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할만하다.
그러나 이들 지표는 물론 국민경제 전체의 경기동향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경제부문별로 볼 때는 건설업처럼 현재 도리어 심한 불황을 겪고있는 부문도 상당수 있다.
더우기 국민대다수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최근의 경기를 과열이라고 부르는 데 대하여 실감이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추곡수매가가 동결된 농민이나, 임금 또는 봉급이 거의 묶였거나 소폭 인상에 그친 근로자나 봉급생활자, 영세한 자영업주 및 중소기업들에는 경기가 이례적인 호황이라든가, 과열이라는 말에 대해 피부로 느낄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최근의 과열 경기를 초래한 주된 요인은 무엇인가? 가장 두드러진 것은 투자는 별
로 늘지 않고 있는데 반하여 소비가 급속하게 증대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소비증가가 경기를 과열상태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승용차·냉장고·TV·오디오 및 VTR등 내구소비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여관·사우나탕·안마시술소· 고급음식점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요즈음의 경기과열이 일부 내구소비재산업과 소위 향락산업의 번창함에 의하여 초래되고 있는 현상은 일시적인 경기과열의 문제를 넘어서는 매우 중요한 변화로 여겨진다.
그 이유를 보면 첫째로 경제의 체질이 소득가운데서 소비를 가능한 한 줄여서 저축을 증대시킴으로써 이를 재원으로 투자하여 자본축적을 이룩하고 생산능력을 증대시키는 정도에서 벗어나 소비지향형 경제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생기는 가장 중요한 부작용의 하나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외채의 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계의 경우 만일 소득보다 지출이 더 많다면 이 가계는 남에게 부채를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달에 30만원을 버는 어떤 가정이 35만원씩 지출을 한다면 이 가계는 매달 5만원씩을 남에게서 빌어야 하며 이것이 오랜 기간동안 누적되면 거액의 빚으로 변할 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원리는 국민경제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1980년에 우리 국민 모두의 소득인 GNP는 약 6백억 달러였으나 국민 모두의 지출은 약 6백50억 달러에 이름으로써 소득보다 지출이 50억 달러가 더 많았었다. 그런데 이 해의 수출은 2백억 달러이며 수입은 2백50억 달러로서 우리가 내다 판 것보다 들여 온 물건이 50억 달러 어치가 많았다. 즉 나라안에서 GNP보다 지출이 50억 달러가 많아 물건이 모자라게 되면 이 차이는 수출보다 수입이 50억 달러가 많음에 의하여 채워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물건을 2백억 달러 어치 수출하고 남의 물건을 2백50억 달러 어치 수입할 수는 없으므로 차액인 50억 달러는 결국 외상으로 사온 것이 되며 이를 흔히 국제수지의 적자라고 부르는 데 이러한 적자가 오랫동안 누적되면 엄청난 액수의 외채가 되는 것이다.
액수는 해마다 다르나 해방이후 근40년 동안 우리는 이러한 만성적인 국제수지의 적자에 시달려 왔으며 그 결과 83년 말 현재 장단기의 외채잔액이 4백억 달러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는 결국 저축이 부족하고 소득보다 지출을 많이 한데서 초래된 것이다. 우리보다 저축률이 월등히 높은 일본과 대만이 늘 국제수지가 흑자를 보이며 외채가 거의 없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둘째로 공장을 짓는데 투자하는 것보다 향락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이윤이 많이 생겨 사치성 서비스업이 번창하고 있는 것은 자원배분이 크게 왜곡되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치성 서비스업 부문으로의 자원이동은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국력의 낭비를 자초하는 것으로서 각별한 경계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세째로 앞에서 지적한대로 국민일반이 호황이니 과열이니 하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가전제품이 엄청나게 팔리고 유흥업소가 번창하고 있는 것은 호황이 부분적임을 나타내며 국민대다수에게 골고루 확산된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계층 간의 위화감을 부채질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최근의 이러한 경기동향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정부는 총통화의 증가율을 11%선으로 더욱 낮추는 긴축적인 금융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총수요 또는 총지출을 줄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는 82년 하반기에 거액의 어음부도사건을 수습하기 위하여 통화량의 상당한 과잉창출이 있었음을 상기할 때 바람직한 정책방향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무차별적인 금융의 양적인 긴축은 1차적으로 단자회사나 보험회사와 같은 제2금융권 및 증권시장을 통한 자금의 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또한 기업들이 은행의 돈줄이 막힘으로써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게 되면 이는 성격상 투자자금이 아니라 단기의 운영자금밖에는 조달할 수가 없으므로 투자를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무차별적인 긴축금융보다 선별적인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투자자금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양적인 금융긴축이 최근의 과열소비나 사치성 서비스업 부문으로의 자원이동과 같은 중요한 부작용을 제거할 수있는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저축은 부진한 가운데 소비풍조는 만연되어 있고 자원배분이 정상적인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는 등 경제의 흐름이 상당한 정도로 왜곡되어 있는 것을 근본부터 바로잡기 위해서는 금리의 자율화를 서서히 단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돈이 부동자금으로 떠돌아다니지 않고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즉 저금리체계의 단계적인 수정을 통해서 저축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함으로써만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며 자원배분의 왜곡도 바로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자율의 매개변수적인 기능을 1차적으로 회복시킨 후 부동산투기를 제도적으로 완전히 봉쇄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며 동시에 사치적인 서비스업에 대해서는 극도의 중과세를 실시함으로써 국력의 소모를 철저히 규제할 필요가 절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애덤·스미드」가 그의 『국부론』에서 지적하고 있는 「모든 낭비하는 사람은 공공의 적이며 절약하는 사람은 사회의 은인이다」는 평범한 진리가 특히 고소득층부터 철저히 몸에 배야만 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경기동향은 우리가 아직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경제원칙에서도 크게 벗어나서 행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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