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워싱턴 가서도 샌 바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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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논설위원

안 되는 집구석엔 공통점이 있다. 내분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삐걱거리면 틀림없다. 경제가 예전만큼, 또는 생각만큼 잘 안 돌아간다는 신호다.

 이웃 일본이 반면교사다. 아베노믹스의 출발은 좋았다. 주역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 2년 전 둘은 찰떡궁합이었다. 아베는 전임 총재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구로다를 모셔왔다. 구로다는 기대에 부응했다. 무제한 돈 풀기, 첫 번째 화살을 거침없이 쐈다. ‘아베노믹스의 선봉장’이란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2년이 흘러 아베노믹스는 요즘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섰다. 부동산·주가가 뛰고 수출은 늘었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가계엔 돌아온 게 없다. 재정 적자 부담이 커졌고 수입 물가만 비싸졌다.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베와 구로다의 찰떡궁합에도 균열이 시작됐다. 조짐은 지난해부터지만 본격화한 것은 올 초다.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구로다가 쓴소리를 했다. “재정에 대한 신뢰 악화로 일본 국채 금리가 급등할 우려가 있다”며 경고했다. 올해로 계획했던 2차 소비세 인상을 아베가 철회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일본의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40%다.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다. 구로다는 아베가 2차 소비세 인상 약속을 지켜주길 원한다. 그래야 계획대로 2020~2021년 재정 흑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베는 딴소리다. “경제가 버틸 수 없다”며 “오는 2017년 4월 이후에나 인상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후퇴했다. 아베 진영에선 되레 “구로다 총재가 너무 나갔다”며 볼멘목소리다. 일본 경제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반짝 호황 뒤 긴 불황이냐, 구조 개혁을 통한 진짜 회생이냐. 공교로운 시기에 아베노믹스의 두 축이 엇박자다.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우리는 어떤가.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 그대로다. 최경환 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시작은 좋았다. 지난해 9월 호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 때는 와인 회동까지 했다. 최경환은 “금리, 척 하면 척”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과연 이주열은 이후 세 차례의 금리 인하로 화답했다. 이런 찰떡궁합을 놓고 “역시 학연이야” 소리까지 나왔다.

 1년이 지난 요즘은 달라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9일 최 부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경기 회복에 재정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며 훈수를 뒀다. 말이 점잖아 훈수지 사실은 ‘금리 탓만 하지 말고 재정이나 똑바로 하라’는 경고다. 이 총재는 지난달 30일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고 작심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간 많이 맺혔던 울분을 토로하는 듯했다.

 최경환의 응수도 톤이 높아졌다. 며칠 전 워싱턴 G20 회의에서 “경제가 어려워지면 금융정책에 변화를 줘야 한다”며 대놓고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고 반드시 한국이 따라 올려야 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주열은 곧바로 “금리를 세 번이나 낮춘 나라는 많지 않다”고 받아쳤다. 멀리 워싱턴까지 가서 만천하에 대놓고 서로 네 탓하기 바쁜 재정(경제부총리)과 금리(한국은행 총재), 한국 경제의 앞날이 어떨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요즘 경제, 한은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도 쉽지 않을 판이다. 부동산·주가는 뛰는데 수출은 기대만큼 안 늘고 있다. 주저앉은 소비는 영 회생 기미가 없다. 거품 활황이냐 회복의 청신호냐, 해석이 구구하다. 엇갈리는 신호들이 가뜩이나 힘든 경제에 길을 잃게 한다. 온통 성완종으로 뒤덮인 정치는 아예 작동 불능이다. 이럴 때 경제 사령탑마저 방향을 놓쳐선 답이 없다.

 재정과 통화(또는 금리)는 2인3각이다. 딱딱 맞아야만 굴러간다. 어느 한쪽이 뻗대면 한 발짝도 못 가고 쓰러질 수 있다. 2인3각 달리기의 승리 비결은 단순·명료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바로 그것이다. 하물며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지 않은가.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