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경제교육>경제성장과 과열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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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경제는 세계적으로 소문난 고도성장 케이스다. 사실 60년대 이후 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거듭한 나라가 없었다.
4년여의 지독한 불황에 혼이 났지만 고도성장의 저력은 여전하다. 이미 작년의 경제성장률이 9.3%로 목표치(7%)를 크게 넘어선 데 이어 금년 1·4분기 성장률도 10%에 육박할 전망이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경이었는데 어느새 과열경기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기가 너무 급속히 달아올라도 문제다. 경제활동의 바로미터인 경제성장률이란 마치 인체의 혈압파도 같은 것이다. 지나치게 고율 성장을 계속하다보면 고혈압환자 짝이 난다. 몸 전체에 피와 영양을 제대로 공급하기는커녕 혈관이 터지거나 막혀버리고 만다.
그 동안 우리경제가 고도성장에는 성공한 반면 인플레와 외채를 잔뜩 짊어지고 고생하는 것이 바로 그 부작용이다.
어느 나라고 「성장」이 경제정책의 으뜸이다. 경제활동이 활발해야 일자리가 늘어나 실업자도 줄이고 소득도 높일 수 있다. 선진국의 경우 보통 연간성장률 3∼4%정도를 유지하면 적당한 수준으로 본다. 우리 나라는 그 정도로 안 된다. 해마다 새로 생겨나는 취업희망인구가 40만∼50만명에 달하는데 이들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7%수준의 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
취업인구를 줄이자면 인구증가율 자체를 줄여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경제는 목표성장률부터가 선진국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성장률을 높여 잡으면 그만큼 다른데서 무리하기 쉽다. 공장을 지으려해도 자금이 없어 한국은행에서 돈올 찍어내고 외채를 빌어 쓸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고도성장과 물가·국제수지와는 상충되는 관계다.
경제사정이 좋아지면 자연 씀씀이가 커지고 흥청거리게 마련이다. 많이 쓰면 많이 팔리고 또 많이 생산하게 된다. 경제활동은 가속적으로 활기를 띠게된다.
그러나 아무리 선진국경제라도 이런 과정에서는 꼭 물가가 오르게 마련이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나오고 물건이 달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재작년 경기가 여전히 수렁에서 헤매고 있을 때인데도 엉뚱하게 적 벽돌 품귀현상을 빚어 야단을 떨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꽁꽁 얼어 불었던 부동산 경기가 갑작스레 일어나자 적 벽돌이 모자라 선금을 주고도 못사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소비가 늘면 자연 수입 해다 쓰는 것이 늘어난다 .기업들도 시설투자를 늘리기 위해 외국기계를 사와 설치한다. 물론 수출을 통해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면 야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국제수지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또 물가안정만 생각한다면. 값싼 외제를 수입 해다 쓰고싶지만 이것 역시 국제수지와 상치되는 것이다.
이처럼 소위 「3마리의 토끼」로 불리는 성장-물가-국제수지 문제가 서로 맞물려 있는 만큼 성장 하나에만 치우치다보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이것들을 서로 균형 있게 조화시켜나가는 일이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그러나 경기를 부양시키거나 진정시키는 정책도 적당하고 꾸준해야지 너무 지나치거나 급작스러우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난다. 최근의 급속한 경기회복도 정부가 건축부문을 중심으로 너무 급속하게 부양책을 써온 결과다. 최근 들어 돈줄을 강력히 죄고 있지만 이미 너무 많은 돈을 풀었기 때문에 쉽사리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책이란 타이밍이 중요한데 그걸 놓치면 아무리 강한 약을 써도 잘 듣지 않는 게 경제다.
과열경기를 놓고 시비를 벌이고 있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연방준비이사회(중앙은행)측이 과열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금리를 올리자 정부 쪽에서 공연히 찬물을 끼얹는다며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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