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전문경영인-진로그룹(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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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진로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 지난 24년 평남용강에서 진천양조상회를 열고 진로를 빚어낸지 60년을 지내면서 진로는 소주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그 60년동안 6·25전난으로 인한 남하, 60년대말 삼학과의 치열한 경쟁등 몇차례의 고비를 겪어온 진로는 71년 삼학의 예기치 못한 퇴진이후 국내소주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했다.
이제 진로는 모기업인 (주)진로를 비롯, 진로위스키·진로유리·(주)쥬리아·(주)서광·도원개발등 6개 기업군에 83년 총매출 2천9백억원의 어엿한 중견그룹으로 자라났다.
진로의 경영체제는 철저히 혈연의 바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진로를 창업한 장학엽 회장을 비롯한 현 장익용 회장의 선대5형제가 일단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이미 작고한 학희씨 외에는 지금도 모두 계열각사의 회장·사장직을 갖고 있는 것을 비롯해 익용씨를 포함한 대부분의 2세들이 경영에 참가하고 있다.
창업1세인 장학엽씨가 (주)진로회장, 학섭씨가 (주)서광회장, 학형씨가 도원개발사장, 학준씨가 (주)진로 감사직을 각각 맡고있다.
진로의 경영권 승계는 진로가 완전히 기반을 굳혔던 지난75년에 이루어졌다.
50년간 기업을 이끌어온 학엽씨가 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가족회의를 통해 5형제중 둘째인 학섭씨의 장남인 익용씨가 진로의 경영대권을 이어 받았고 이후 2세경영이 체제를 갖추어나갔다. 장자승계보다는 능력에 따른 가족승계의 틀을 세운 셈이다.
이제는 익용씨가 (주)진로사장·진로위스키회장·(주)서광사장을 겸직, 실질적인 그룹회장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사촌들인 택용씨가 쥬리아회장, 하용씨가 진로유리사장, 봉용씨가 진로전무. 건용씨가 진로서울사무소장(상무)을 각각 맡고있고 3세인 진호씨가 진로상무로 그룹기획실장 자리에 올랐다.
이밖에도 장익용 회장의 부인인 백기춘씨가 (주)서광이사를, 매제인 고병헌씨가 쥬리아사장을, 인척인 억용씨가 서광전무를 맡고있는등 그룹경영진의 주요포스트는 대부분 가족으로 짜여져 있다. 물론 그룹규모가 커가면서 혈연관계를 갖지 않는 전문경영인의 비중이 양적으로 훨씬 커졌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의미에서 진로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어떤 그룹보다도 공고한 가족경영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진로가 본격적으로 그룹으로서의 틀을 갖춘 것은 82년께부터다.
그룹기획실이 생기고 그룹경영회의를 열게 되면서 각 사별로 운영되던 급여체계며 인사·투자문제등이 그룹차원에서 논의·조정된다.
그룹경영회의는 정해진 날짜 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열린다. 대그룹처럼 엄숙한 분위기나 격식 없이 이야기가 오가지만 최종결정은 장익용 회장에게 일임되어있다.
창업세대인 각사 회장들은 이 모임에 참석치 않는다.
30대 후반의 비교적 빠른 나이에 그룹의 최고경영자지위에 오른 장회장은 서울대 공대를 나와 서독슈투트가르트 공대에서 기계공학울 전공한 엔지니어출신.
남의 조언을 즐겨 구하고 귀담아 듣는 성격이지만 평소 자신이 창업자의 2세가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그만한 기업은 끌어나갈수 있는 전문경영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경영소신에 대한 자부심도 깊다.
물론 진로가 「가업」으로 이어져왔고 창업세대가 건재한 만큼 가족의 의견이 그룹의 경영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만 그 영향력은 장익용 회장의 소신을 밀어주는 쪽으로 크게 작용한다.
진로사장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입에 대지 않던 술을 이제는 위스키 한병을 비울수 있게 된 것도 자신이 맡고있는 기업을 속속들이 알려는 경영인다운 열의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같은 열의가 그에 대한 가족의 믿음의 바탕을 이루었고 남들이 그를 단순한 후계자가 아닌 실질적인 뜻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받아들이는 원인이 되고있다.
진로의 규모가 커지고 업종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공고한 「가족경영체제」를 계속해 나가기는 힘들겠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한 틀은 쉽사리 퇴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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