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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꽃 왔습니다” 침구·커피·화장품 … 별별 정기구독 서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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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도착했다. 격주 화요일 꽃이 집으로 배달된다. 오늘 배달된 꽃은 은은한 핑크색이 감도는 라넌큘러스(Ranunculus)에 흰색 장미가 섞여 있다. 동네 꽃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아니다. 호텔이나 백화점 쇼윈도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꽃이다. 플로리스트가 직접 골라 꽃다발로 만들어 보내서인지 뭔가 다르다. ‘줄기 끝을 사선으로 자르고 줄기 끝이 잠길 정도만 물을 부을 것, 물은 하루에 한 번씩 갈아주면 좋다’는 내용의 설명서도 동봉돼 왔다. 2주 후 이 꽃이 시들 때쯤엔 다시 새로운 꽃다발이 배달될 것이다. 2주 후에는 어떤 꽃이 올까.’

꽃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신청한 김수미(34)씨. 꽃시장에 갈 시간을 내기 힘들었던 그는 “플로리스트가 만든 꽃다발로 집안이 환해졌다”며 “다음 번 꽃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가 늘고 있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란 정기적으로 집까지 원하는 물건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내가 직접 물건을 고르는 게 아니라 전문가가 대신 골라서 보내주는 큐레이팅(curating) 서비스다. 식재료나 다이어트 식단을 배달해주는 서비스의 경우 대부분 소비자가 직접 품목을 고른다. 하지만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는 다른 사람이 골라주는 큐레이팅 기능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의 시초는 2011년 나온 ‘글로시박스’를 꼽는다. 정기구독료를 내면 파운데이션, 클렌징 폼, 아이섀도로 가득 채워진 화장품 박스를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였다. 뚜껑을 열면 듣도 보도 못한 신상품과 요즘 인기 연예인이 즐겨 쓴다는 최신 아이템이 들어 있다.

글로시박스 이후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는 간식, 생활용품, 옷, 임신·출산용품 등으로 분야가 넓어졌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현재 서브스크립션 쇼핑몰은 50여 개에 이른다. 시간이 없어서, 또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직접 구매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 품목이 인기다. 꽃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하는 ‘쿠카’의 박춘화(32) 대표는 “꽃을 일상의 소품으로 여기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막상 구입하려면 부담스러운 게 꽃”이라고 말했다. 이 업체의 경우 1회 서비스는 2만3900원, 6개월에 25만원 정도다. 꽃의 시가에 따라 양이 적을수도, 많을 수도 있다. ‘블룸앤보울’은 2회 4만9900원, 한 달에 3회는 7만4600원이다. ‘테이블 플라워’는 1회 2만1900원, 2회 4만3800원이다.

커피 원두를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빈 브라더스’는 바리스타가 고른 원두를 한 달에 한 번 보내준다. 로스팅 후 5~7일을 넘기지 않기 때문에 신선하고 다양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커피메이커, 프렌치프레스 등 추출 도구에 맞춰 원두 분쇄도 해준다. 300g(30잔 분량)에 2만8000원, 600g이 4만4000원이다. ‘마이빈스’의 경우 4월에는 개별 포장한 원두 75g 세 봉, 더치커피 210mL를 2만8000원에 판매했다.

‘화이트위클리’는 지난해 10월 시작한 국내 최초 침구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다. 1~2주에 한 번씩 침구를 바꿔준다. 한 달 서비스료는 10만원대다. 이불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 “침구는 부피가 커서 세탁하기 불편하고, 세탁소에 보내는 것도 번거로워요. 호텔처럼 늘 새 것 같은 침구를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했죠.” 장창주(42) 화이트위클리 대표의 설명이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 품목에는 양말, 면도기 등 기상천외한 아이템도 있다. 장씨는 “처음에는 신기하니까 호기심에 구독을 신청했다가 몇 달 후 시들해져서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며 “신문이나 잡지처럼 1년 정도 구독했을 때 비용적으로, 시간적으로 유용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서비스가 늘면서 ‘서브스크립션 커머스(Subscription Commerce)’라는 용어도 생겼다. 결정하는 걸 싫어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쇼핑 방식이라는 해석도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5』는 ‘무엇을 사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고른 후에도 선택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햄릿증후군’을 올해의 트렌드로 선정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패션, 뷰티, 리빙 등 각 분야에 걸쳐 선택의 폭은 넓어지는데 정작 뭘 사야 할지 몰라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문가의 큐레이팅 도움을 받는 서브스크립션 시장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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