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하루 9억통 쓰레기 메일 '무차별 공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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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일주간 미국 출장을 다녀온 뒤 지난 19일 사무실에 출근한 회사원 최모(34)과장은 내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컴퓨터에 가득히 쌓인 쓰레기(스팸)메일 때문이었다.

평소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밤새 날아온 쓰레기를 없애는 것이었기에 '그동안 쌓인 걸 지우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군' 각오를 하고 아웃룩 익스프레스를 열었다. 하지만 메일은 수신되지 않고 에러 메시지만 계속 떴다. 급기야는 치명적 오류가 발생했다며 화면이 파랗게 변했다.

컴퓨터 부팅과 재부팅을 반복하며 메일을 받으려던 崔과장은 결국 1시간30분 만에 포기하고 회사 전산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전산실 담당자는 용량을 초과하는 쓰레기 때문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담당자가 회사 서버에서 자신의 컴퓨터로 崔과장의 메일을 내려받아 보니 일주일간 들어온 메일이 1천2백여개에 달했으며, 그중 90% 이상이 음란물과 물품광고 등 쓰레기 메일이었다.

崔과장은 전산 담당자 모니터에서 제목만으로 메일 내용을 파악해 가며 쓰레기 메일을 삭제했고, 담당자는 이렇게 추려진 1백20개의 메일을 별도의 파일로 만들어 압축한 후 회사의 인터넷 파일 공유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崔과장은 파일 공유 사이트에 접속, 파일을 내려받고서야 비로소 업무와 관련된 메일을 읽을 수 있었다. 상사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崔과장이 집과 회사 컴퓨터로 받는 쓰레기 메일은 하루에 2백여개에 달한다. 이를 지우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아까울 뿐 아니라 음란 메일 때문에 아내와 아들 앞에서는 메일을 점검하기가 겁난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 검색 중이나 게임을 즐길 때 음란 광고성 화면(팝업창)이 뜨는 일이 잦아 짜증을 더한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쓰레기 메일=지난해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산하 불법쓰레기 메일 대응센터에 접수된 신고.상담 건수는 신고 9만7백86건, 상담 1만5천2백90건으로 총 10만6천여건에 달한다. 이는 2001년의 총 상담.신고 건수 2천9백23건의 30배 수준이다. 2000년의 3백25건과 비교하면 3백배에 달한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신고.상담 건수는 4만7천건에 이른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하루 평균 네티즌 한 명당 받는 쓰레기 메일은 지난 3월 현재 50통으로 2001년의 4.7통의 10배 수준이다. 지난해의 34.8통과 비교해도 50% 가까이 늘었다.

이 가운데 노골적인 음란 쓰레기 메일의 비율이 63%에 달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음란메일 비율은 2001년 18.5%에서 지난해 61%, 3월 현재 63%로 계속 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은 전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쓰레기 메일의 양이 지난해엔 하루 평균 56억통, 올해엔 73억통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정통부는 한국에서 하루에 유통되는 쓰레기 메일을 9억통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경제적 피해도 막대하다. 인터넷 조사전문업체 나라리서치는 지난해 쓰레기 메일로 인한 연간 손실이 ▶저장에 따르는 비용 1조4천57억원▶네티즌 1인당 쓰레기 메일을 지우는 데 소요되는 시간(연간 44시간) 손실 1조1천7백59억원 등 연간 2조6천4백51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 한이식 사장은 "지난해 손실비용은 하루 평균 쓰레기 메일량 45통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올해는 쓰레기 메일 증가에 따라 피해 액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쓰레기 메일을 막기 위한 시스템 개발 비용과 정신적 피해까지 고려하면 쓰레기 메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원은 지난 22일 쓰레기 메일을 보내는 개인이나 단체에 건당 5백달러(약 7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이 법안은 수신자가 특정 발송자의 광고 메일을 받기로 동의한 경우에만 광고메일을 보낼 수 있는 이른바 '옵트 인' 방식을 채택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는 발송자가 광고 메일을 보낸 뒤 수신자가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내야 메일을 발송하지 않는 '옵트 아웃' 방식이다.

◇민관 합동 대책위 구성=정부는 쓰레기 메일의 피해가 늘어나자 대책마련에 나섰다.

지난 22일 정통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총리실.검찰청 등 관계 부처와 경실련.대한어머니중앙연합회 등 시민단체, 다음.네이버 등 업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원회 간사인 정보통신부 정보보호이용과 김기권 과장은 "인터넷의 속성상 정부 주도의 규제나 노력만으로 각종 불법 유해 정보 대응에 한계가 있어 합동 대책위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법 개정 등을 통해 청소년에게 유해물을 발송할 경우 최고 징역 2년 또는 벌금 1천만원의 벌금에 처하는 노력을 해왔으나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 대책위에서는 불법 음란 쓰레기 메일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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