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승희 춤 전수자가 본 북한무용 재일동포3세 백향주씨 논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승희의 춤과 최승희 이후 북한 무용의 변천 과정을 조망한 연구 논문이 나왔다.

연구자는 재일동포 3세인 백향주(29)씨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예술전문사(석사) 과정을 수료한 그녀는 '최승희 '조선민족무용기본'의 형성과 변화'란 논문을 완성했다.

보살춤을 추는 최승희

석사 수준임에도 이 논문에 관심이 가는 건 구체적인 동작을 토대로 한 첫번 째 북한 무용 연구 결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성장한 백향주는 여섯 살 때부터 평양을 드나들며 무용 공부를 한 조총련계였다. 그녀의 아버지 백홍천씨는 조총련 금강산 가극단 출신 무용가. 백향주는 열두살 때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했고, 1991년부터 7년간 최승희의 수제자인 전 국립만수대 예술단 무용창작가 김해춘으로부터 최승희 춤을 전수받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녀에겐 '최승희의 재래(再來)'란 말이 따라다녔다.

남한에서 98년 첫 공연을 가진 그녀는 2001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뒤 국내로 들어와 2003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번 논문은 우선 최승희가 58년에 완성시킨 '조선민족무용기본'이 무엇인지 규명한다. "최승희는 북한에서 무용서사시.무용조곡.무용극 등의 장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역사적 전통을 우선시하면서도 서구 근대 무용 훈련의 장점인 분석력.계열성.과학성 등을 수용해 '조선민족무용기본'을 완성시켰다"라고 논문은 기술한다.

구체적인 동작에 대해서 백씨는 "한글자모와 비슷하다. 각각의 동작은 상체 10가지, 하체 10가지, 각도 8가지, 손표정 4가지로 나뉜다. 조선민족무용기본은 이렇게 나뉜 몸의 각 부분을 서로 조합시키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기계적 조합이 가능하기에 북한 무용은 집단성과 통일성을 갖게 된다고 백씨는 덧붙였다.

외향적이고 역동적인 북한 춤과 달리 남한 춤은 "내면의 감성을 표현하는 데 강점이 있다"고 말하는 백향주씨.[안성식 기자]

이후 북한의 무용은 정치적 상황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70년대엔 '최승희 죽이기'가 시도된다. 67년 최승희가 숙청된 뒤 그녀가 완성한 '조선민족무용기본'을 부정한다는 것. 대신 '피바다'와 같은 혁명 가극이 대세를 이루면서 음악무용극에서도 무용의 역할은 축소된다. 또한 전반적인 춤의 동작은 획일화.속도화 를 띠면서 예술성보단 혁명성이 강조된다.

반면 80년대는 '최승희의 재조명' 시기다. 남북문화교류가 조금씩 활발해지면서 민속 무용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났다는 것. 최승희의 기본 체계가 회복되고, 무용 경향도 대작 중심에서 소품 위주로 옮겨간다.

90년대 들어서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북한 무용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흔들리는 '이념성'을 보완하기 위해 '민족성'을 강조한다는 것. 예술 전반에 걸쳐 '조선민족제일주의'가 중심을 이루어 전통적인 민족 생활이 무용 창작에도 적용된다고 논문은 설명하고 있다.

백씨는 "이번 논문은 북한 무용을 실증적으로 고찰하는 출발점이다. 직접 공연도 하고, 연구도 해서 이질화된 남과 북 무용의 간극을 좁히고 싶다"고 말했다. 백씨는 논문 내용을 토대로 한 시범 무대를 14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진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