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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진 염기훈·마음 비운 정대세 … 무섭네요, 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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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염기훈(왼쪽)과 정대세는 상처를 딛고 올 시즌 화려하게 부활했다. 18일 열린 K리그 수퍼매치 서울전에서도 팀의 5-1 대승을 이끌며 함께 환호했다. [사진 수원 삼성]

프로축구 수원 삼성이 올 시즌 첫 K리그 수퍼매치(수원-서울 라이벌전)를 대승으로 장식했다. 맞수 FC 서울의 골망을 다섯 차례나 흔든 압도적인 승리였다. 공격진의 두 기둥, 염기훈(32)과 정대세(31)의 과감한 변신이 화려한 골잔치의 배경이었다.

 수원은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의 경기에서 5-1로 이겼다. 이상호와 정대세가 두 골씩 넣었고, 염기훈도 한 골을 보탰다. 수원이 서울을 상대로 5-1 승리를 거둔 건 프로축구 전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1999년 이후 16년 만이다. 수원은 정규리그 4승(2무1패)째를 따내며 승점 14점으로 선두 전북(19점)을 추격했다. 역대 수퍼매치 전적에서도 32승16무25패로 서울과의 간격을 벌렸다. 서울은 전반 42분 몰리나의 프리킥 골로 영패를 면했다.

 수원의 상승세는 눈부시다. 정규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8경기 연속 무패(5승3무)다. 지난달 8일 포항과의 K리그 개막전 패배(0-1) 이후 한 달 넘게 지지 않았다.

 상처를 극복한 두 남자, 염기훈과 정대세가 ‘태풍의 눈’ 역할을 맡았다. 염기훈은 올 시즌 8경기 연속 공격포인트(5골·6도움)를 기록해 ‘왼발의 마법사’로 불리지만, 지난해까지도 남모를 마음고생을 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아르헨티나전에서 오른발 슈팅찬스를 왼발로 소화하려다 실패한 이후 악플러들로부터 ‘염의족(염기훈+의족)’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정대세는 지난 시즌이 축구인생의 최대 고비였다. 브라질 공격수 로저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 멤버로 전락했고, 남북의 정치적인 기류와 맞물려 북한 대표팀의 부름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과 올해 초 호주아시안컵 본선에 잇달아 불참했다.

 두 선수는 나란히 올 시즌을 터닝포인트로 삼았다. 염기훈은 ‘자상한 형’에서 ‘강단 있는 리더’로 거듭났다. AFC 챔피언스리그 일본 원정을 앞두고 19일 김포공항에서 만난 염기훈은 “평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지만, 지난달 초 베이징 궈안(중국)과 포항에 연패한 뒤엔 선수단을 모아놓고 호통을 쳤다. 잠재력을 실전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후배들이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염기훈은 수퍼매치 득점 직후 서포터스 앞으로 달려가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흉내냈다. ‘수원의 마에스트로가 되겠다’는 의지를 팬들 앞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였다. 염기훈은 “프리킥 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한 시간씩 연습한다. 체중도 3kg 줄여 프로 데뷔 때 수준(77kg)을 회복했다”면서 “리더이자 해결사로서 내 몫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대세는 혼자 튀는 ‘솔리스트’에서 동료들과 함께 호흡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변신했다. 수퍼매치에서 골 욕심을 자제하고 동료들에게 여러 차례 결정적인 패스를 제공해 대승의 디딤돌을 놓았다. 정대세는 “몸보다는 생각이 바뀐 게 비결”이라면서 “30대에 접어든 정대세의 축구는 앞으로도 수퍼매치와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에 대한 칭찬과 격려도 잊지 않았다. “대세는 골에 대한 본능적인 갈증이 느껴진다. 최근에는 동료의 움직임을 살피는 여유도 갖췄다”는 염기훈에게 정대세는 “내가 올 시즌 수원의 우승을 확신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기훈이 형이 우리 팀에 있기 때문”이라고 화답했다.

사이타마=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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