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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무나물,깻잎 김치 경상도 양반집 맛 그대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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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 28면

따끈따끈하게 바로 부쳐낸 육전과 돌도다리회, 참가자미 세꼬시. 모두 입에 착 감긴다.
▶단비 :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 20길 21-12.
전화 02-797-8375. 휴일은 따로 없다. 육전 3만5000원.
점심 정식 2만8000원, 저녁 정식 6만7000원.

오랫동안 나의 음식 시계는 전라도를 중심으로 돌아갔었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라면서 입맛을 익혔으니 그 시작이야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고향을 떠나 오래도록 서울에서 살면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전라도 음식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았고, 유명하다는 음식점에서도 전라도 음식을 내세우는 곳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57> 한남동 ‘단비’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식’을 하다가 새로운 개안을 하게 된 것이 바로 경상도 음식이었다. 사실 전라도 음식에 비하면 경상도 음식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맛이 없다고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막상 접하고 보니 경상도, 그 중에서도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한 양반가문의 반가(班家)음식은 전라도 음식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수준 높고 훌륭한 음식들이었다.

전라도 음식은 풍성하고 맛이 화려한 편이다. 넓은 평야 지대와 2면으로 둘러싸인 바다에서 풍부한 식재료들이 나오는데다가 입맛 까다로운 천석꾼, 만석꾼 부자 지주들이 많았던 때문에 음식이 그렇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하면 경상북도 반가 음식은 소박하고 절제된 것이 특징이다. 평야 지대가 많지 않고, 바다에 접해 있긴 하지만 높고 깊은 산에 둘러싸인 곳들이 많아 식재료들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양반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수준 높은 조리방법들이 있다. 450여 년 전에 기록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 340여 년이 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요리서이자 반가 음식의 최고로 꼽히는 『음식디미방』이 모두 경상북도 지역의 종가에서 나왔다. 이런 전통 요리방법을 토대로 소박하지만 깊이 있고 세련된 맛의 음식들을 발전시켜 온 경상북도 반가 음식들이 바로 오늘날 고급 경상도 음식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서울에서는 경상도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전라도 음식에 비하면 맛이 강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가 높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어쩌다 만나면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최근에 알게 된 한남동 ‘단비’가 바로 그런 곳이다.

‘단비’는 어머니와 딸이 함께 한다. 어머니 김영자(74)씨가 음식을 맡고 딸 박민선(42)씨가 운영을 하고 있다. 2014년 12월에 개업했다. 모녀는 각각 오래전에 음식점을 했던 경험이 있다. 어머니는 일식집, 딸은 이탈리아 음식점을 했었다. 그러다가 그만둔 이후에 박민선씨는 의류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해왔는데 어머니 연세가 더 드시기 전에 모녀가 함께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음식점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의 음식들은 대부분 고급스럽고 깔끔한 경상도 음식들이다. 포항 출신인 어머니 김씨가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운 음식이라고 한다. 일 년에 제사를 8차례나 지내던 집이었다고만 겸손하게 말씀하시는데 음식의 수준이 아주 높고 맛이 섬세하다. 낚시로 잡은 자연산 생물 생선을 사용하고 냉동하지 않은 고기, 매일 새벽에 장을 봐서 사온 신선한 채소를 사용하는 등 싱싱한 고급 식재료를 고집한다. 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정성을 다해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양반 가문의 가풍을 생각나게 한다.

이 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육전이다. 냉동하지 않는 ++등급의 한우 보섭살(소 뒷다리살 일부. 풍미가 좋고 부드럽다)로 주문받은 즉시 따끈따끈하게 부쳐 내온다. 부드럽고 감칠맛 나게 술술 씹히는 것이 최근 식당에서 먹어본 육전 중에서는 최고였다.

주문을 받은 다음에 바로 삶아낸다는 무나물도 맛있다. 별다른 양념 없이 그저 소금 간으로 삶아서 참기름으로 마무리한 소박한 음식인데도 따뜻하고 달콤하면서 입에 착 달라붙는다. 정성이 듬뿍 담긴 제사 음식이다. 포항 후포 앞바다에서 낚시로 잡아서 매일 올려 보내는 참가자미 세꼬시를 양념 없이 개운하게 담은 깻잎 김치에 싸서 집 된장에 찍어 먹는 것도 일품이다.

‘단비’의 음식은 모두 양념이나 간이 과하지 않다. 그저 딱 필요한 만큼이다. 많은 식당에서 소비자의 입맛을 끌기 위해 지나치게 간을 강하게 하고 양념을 많이 사용하는 것과 비교된다. 그래서 맛이 편안하고 재료 본연의 맛이 더 잘 느껴진다. 때로는 화려한 것보다 절제된 소박함이 더 가치 있고 진솔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음식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잊기 쉬운 진리다. 경상도 음식을 통해서 이렇게 또 배운다.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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