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사력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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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 한반도 주변엔 한·난 두개의 조류가 불연속 교차 상태를 이루면서 흐르고 있음을 실감한다.
한쪽에선 대화와 교류를 위한 움긱임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군비증강과 그로 인한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발표된 미국 국방성의 84년도 소련군사력보고서(Soviet Military Power. 1984)는 우리를 더욱 긴장케 하고 있다.
그것은 대평양 지역에서는 알래스카 이남의 북태평양과 일본 이동의 서대평양에 국한돼 있던 소련해군의 핵탄두 미사일 잠수함의 작전해역에 동해가 새로이 추가됐다고 미국방성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종래의 소련 해역에서의 핵전략은 미국서해안에 배치된 제3함대 (동태평양함대)와 일본을 모기지로 하고 있는 제7함대 (서대평양함대) 를 차단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나 이제는 미7함대와 우리 한국을 차단하는데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물론 동북아 지역에서 미소가 충돌하게 되면 그것이 재래식 전쟁이든 핵전쟁이든 한반도가 거기에 휘말린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예상돼 온 일이다.
그러나 소련이 동해에서의 핵잠수함 작전을 작전계획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지역에서의 충돌 가능성과 긴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이미 높아져 있다는 사실을 아울러 시사한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되는 것이다.
소련은 이미 베트남에 해군기지들을 확보하고 여기에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는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이것은 소련이 동아시아의 북쪽(불라디보스토크)과 남쪽(캄란만)에 각각 군사력 중심지를 건설해 놓고 이 두개의 힘의 센터를 연결시킴으로써 한·미·일의 해상로, 특히 석유수송로를 위협하면서 중공과 한국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군사적으로 분리시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소련은 이 두개의 기지를 연결시키는 항공기와 군함의 왕래를 현저히 증가시키고 있으며 그 통로는 바로 우리의 동해와 남해의 해상·공중을 통과하고 있다.
최근에 벌어졌던 동해에서의 미국항공모함과 소련잠수함의 충돌, 소련항공기와 우리 공군기의 조우등 심상치 않은 군사적인 현상은 그같은 내막을 표출시킨 사건에 불과하다.
물론 이 지역에서 당장 미소가 충돌하여 핵전쟁으로 확대될 기미가 현존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또 우리는 핵무기가 공격을 위한 무기라기 보다는 전쟁을 예방키 위한 억지용이라는 주장을 더욱 믿고자 한다.
그러나 핵전쟁의 위협은 그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그것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항상 미소의 충돌을 예의 경계하고 이에 대비치 않으면 안된다.
미소양국이 오래전부터 핵무기의 상호 제한을 통해 핵전쟁의 발발을 억제코자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소간의 핵전쟁 또는 동구와 서구간의 핵전쟁 방지에만 국한된 것일 뿐 아시아 지역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은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백인간의 핵전쟁 방지에만 관심이 있다는 일종의 인종주의(racism)적 발상이라는 점에서 불쾌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핵전쟁 방지노력을 전 인류적·범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이 핵강들의 당연한 의무이며 형평과 정의의 실현을 위한 자연스런 귀결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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