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선수들을 보내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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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의 첫 서울대회 참여는 결국 대만선수단의 철수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렇게 될수 밖에 없는 것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스포츠대회에 처음으로 중공이 선수단을 보냈다는 사실에 너나할 것 없이 너무 들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히 우리 테니스선수단이 중공의 곤명엘 가고, 중공청소년농구단이 서울에 온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중공이 우리와 교류를 튼 것을 놓고 우리가 큰 덕이라도 입은 것 처럼 감지덕지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덕을 입힌 것으로 따지면 지난해 중공민항기사건 때 우리야 말로 그들에게 진짜 과할정도로 덕을 입혔다.
체육교류도 그렇다 중공은 90년 아시안게임의 북경유치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자면 정치적 이유로 국제대회참가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아시아올림픽 총회에도 참석해 유치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자연히 중공으로선 우리가 마다하지 않는 한 중공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우리선수들을 입국시길 수 밖에 없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참가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중공의 이러한 방향선회는 환영할만한 사태진전 임에는 틀림 없으나 이는 양쪽 이해의 일치일 뿐 한쪽의 시혜는 분명히 아니다.
이렇게 신세진 일도 없고 가까운 장래에 신세질 일도 없는 만큼 중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또한 보다 당당해도 좋을 것이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중공득세의 과정은 대만 퇴조의 역사였다.
중국본토를 잃은 이래 35년간 자유중국은 거개의 「우방」으로부터 단교를 당해왔다. 급기야는 가강 의지하던 미국마저 북경행 티킷을 땄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유중국의 몇 남지 않은 수교국의 하나다.
우리나라도 언제 세계대세에 따라 북경헹티킷을 사야할지 모른다. 국제정치는 현실이니까 그런 여건이되면 미련 없이 결단을 내려야만 되리라.
때가 되어 냉엄한 결단을 하게될 땐 하더라도 지금 우리 페이스와 중심을 지켜야 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시아청소년 농구선수권대회에서 대만선수단이 철수하게된 과정에는 우리측이 페이스를 잃고 휘둘리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적어도 스포츠대회는 우리에게 중공과 대만중 택일이 요구되는 결단의 장은 아니었다.
기껏해봐야 중공과의 관계란 이제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
중공은 북한의 제1의 우방으로 우리와는 총부리까지 마주했던 사이.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드 없다는 국제사회라 이제 말이나 좀 붙여보자는 단계에 불과하다.
그런 어설프고 아무 보장도 없는 관계 때문에 연래의 친구를 잃는다는 건 아무리 한쪽은 크고 한쪽은 작다해도 계산도 맞지 않고 체통도 서지 않는다.
모로 농구팀이 철수한데는 2개의 중국을 의식해 국기·국가사용을 배제했던 홍콩ABC농구대회의 선례를 무시하고 철수의사를 내세워 국기사용을 관철하려한 중공의 대국주의적 오만과 스스로 국제사회의 짐이 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자존심만을 내세운 대만의 옹고집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
그러나 이들예게 책임이 있다고 해서 주최국인 우리의 책임이 면제되진 않는다.
이번의 우리측 태도는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당당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대만측에는 지난해 홍콩 ABC대회의 선례대로 시상식외에는 국기·국가사용을 배제해 보겠다고 해놓고 중공측에는 사전에 이런 취지를 알리지 못했다.
두팀이 모두 국내에 들어온 뒤 중공측이 국제농구연맹(FIBA)규정에 의거, 국기사용을 강경히 요구하자 결국 개회식과 폐회식에서 국기를 사용키로 결정해 버렸다.
결과적으로 양쪽 눈치를 보다 큰쪽의 요구를 들어 준셈이다. 사대주의란 소리를 들어도 어쩔수 없게 되었고 신의를 저버렸다해도 변명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런 소리는 결정적인 때 한 두번 듣는 것으로 족한 것인데….
큰 나라의 지극히 작은 몸짓 하나에 중심을 잃고 정신을 못차린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어느모로나 이롭지 못하다. 성 병 욱<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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