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검은 손』의 정체|속칭「빨이꾼」조직 일당14명 일망 타진되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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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검찰이 여자·돈·마약·도박으로 얽힌 인신매매 조직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달 하순.
부녀감금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재수 등 3명에 대한 서울 형사지법의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농아)가 수사 당시와는 달리 계속 허위 증언을 되풀이하자 검찰은 피해자와 수화 통역을 맡았던 사람을 불러 추궁한끝에 인신매매 단의 대부 이종순이 이들을 매수한 사실을 밝혀냈다.
D데이 인 지난 1일 하오 10시. 수사관들의 눈에는 긴장감마저 감 돌았다.
이 범죄 조직이 총기를 갖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
가스총으로 무장한 수사팀이 서울 봉천동 주범 이종순의 집을 덮쳤을 때 이는 응접실에 있었다. 그가 거실에 걸어 놓았던 엽총을 잡기 전에 수사관의 민첩한 손놀림이 수갑을 먼저 채웠다.
이 집은 이가 2천만원에 전세 든 2층 양옥집. 이는 평소 동양화취급상으로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다녔고 자기 집 용접실과 안방을 이당의 인물화 등 수십 점의 동양화로 장식해놓았다.
인신매매 범죄 조직의 대부 이종순. 그는 하부조직이 탄로 나면 피해자들을 금전으로 매수하는 방법으로 조직의 비밀을 지켜왔다.
그러나 배신자가 생기면 전과2∼3범인 일꾼들을 시켜 철저히 보복, 조직 이탈을 막는 등 마피아의 수법을 써왔다.
이는 검찰에서 『그 동안 반짜(7일 내에 여자가 도망갈 경우 포주로부터 반액만 받는 것)가 많아 사실상 몇 천만원밖에 못 벌었고 이 돈마저 지난해 아내가 구속되는 바람에 도박 등으로 탕진해 버렸다』고 엄살을 부렸다.

<점조직>
이들은 직장을 구하는 여자를 여관으로 유인, 강제로 욕보이는 유인책 (속칭 빨이꾼) 과 이들을 각지방 포주(속칭 주포) 에게 데려다주는 공급책 (속칭 용달꾼) 및 소개 조직 두목(속칭 까마)으로 구성돼 있다.
외부에의 노출을 막기 위해 이들은 서로 별명이나 가명을 쓰며 인적 사항은 일체 비밀이다.
이들은 또 매일 여자들의「전·출입」상황을 장부에 기록했는데 이것도 모두 암호를 사용해왔다.
예를 들어 『29대돼증2긴』이라는 암호의 경우 「29」는 날짜를, 후로는 대구 포주 집에 넘겼음을 가리키고 「돼」는 별명이 돼지인 빨이꾼 김천용, 「충」은 빨이꾼 김중팔을. 「긴」은 별명이 긴 머리인 용달꾼 신순례를 지칭하는 암호.
이 암호는『유인책 김천용과 김중팔이 여자 2명을 빨아와 공급 책인 신순례를 통해 대구 포주 집에 넘겼다』는 내용.

<유인>
유인책인 빨이꾼 들은 매일 상오10시쯤 2∼3명이 1조가 돼 서울역을 비롯한 각 역전 주변과 시의버스터미널·구로 공단· 영등포시장 등지에 정장 차림으로「출근」한다. 이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구인광고 등을 읽고 있는 10대 소녀들에게 접근, 자신들을 호텔 영업 과장이나 관광업소 지배인등으로 소개한 뒤 사장과의 면담등을 구실로 아지트 격인 여관으로 유인한다는 것.
유인에 성공할 경우 빨이꾼들의 수입은 건당 15만∼20만원.
이들의 또 한가지 임무는 데려온 여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일.
강제로 욕보여 자포자기케 하면 달아날 염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때로 음란비디오까지 동원했다.

<매매>
빨이꾼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주범 이종순은 부산· 대구·광주등지의 포주들과「물건」흥정에 들어간다.
이때 이가 포주들로부터 받는 액수는 두 당 35만∼40만원. 물론 용모가 빼어난 「월척」인 경우는 50만원을 호가한다.
일단 흥정이 끝나면 호송 책인 용달꾼 편에 여자를 보낸다. 용달꾼은 대개 여자이지만 달아 날 우려가 있을 때는 몸집 좋은 남자를 붙인다.
이들은 경비를 포함, 5만원 정도를 받느라.

<피해사례>
전남에서 국교를 졸업하고 80년 상경, 제과점 종업원·미싱공 등으로 일하던 C양 (18)은 지난달8일 영등포역 앞 시내 버스 정류장에서 빨이꾼의 미끼에 걸려들었다.
나비넥타이에 신사복 차림의 김남형(구속)이 접근, 『월1백 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외국인상대 관광 회사에 취업시켜 주겠다』며 꾀는 말에 속아 근처 고급 레스토랑에 따라갔다는 것이다.
그후 C양은「사장 면접」을 위해 봉천동 D여관에 갔다가 부산 S사창가로 40만원에 팔려갔다. <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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