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S 재검토 파문] 말로만 "원칙처리"…집단행동에 白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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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전면 재검토 결정을 계기로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당초 NEIS 문제에 관한 한 원칙을 지키겠다던 정부가 주말 협상 결과 어떻게든 파국은 막아보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여기에는 새 정부 출범 1백일을 앞두고 전교조의 연가투쟁으로 교육계가 대혼란에 빠질 경우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의 극단적인 대결은 일단 피하고 시간을 벌면서 타협안을 찾자는 정치논리가 우선시됐다는 분석이다.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난국을 타개할 때는 정치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그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정보화 사회에서 시스템의 효율성과 개인정보 보호는 언젠가 부닥치게 마련인 문제로 원칙을 정한 뒤 추진하면 된다고 봤다. 그러나 막상 전교조가 힘으로 밀어붙이니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이를 두고 물류대란, 철도 및 두산중공업 분규 등에 이어 정부의 국정 수행에 중대한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집단행동을 무기로 정부에 대해 강하게 요구하면 일단 얻는 게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집단행동으로 이익을 관철하자는 '힘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를 막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조장하는 듯한 결정을 하고 있어 각계에서 터져나오는 요구를 막기도 어렵다. 예컨대 정부가 화물연대와의 협상에서 보조금을 늘려주기로 하자 레미콘.버스 업계 등도 비슷한 요구를 동시다발적으로 내놓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주무부처는 자율적인 정책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매사에 청와대가 너무 나서기 때문이다. 교육부만 해도 NEIS 강행 원칙을 정해뒀다 청와대의 개입으로 사흘 만에 물러섰다. 물류대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치논리가 우선시되면 정부는 물론 집단행동을 하는 당사자들도 청와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또 대통령과 수시로 접하는 청와대의 일부 참모들이 자꾸 '해결사'로 개입하면서 자칫 '인치(人治)의 시스템화'가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는 새 정부 출범 1백일의 중점 홍보사항인 '시스템 위주의 국정운영'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공정해야 할 심판이 룰을 어기거나 마음대로 해석하면 선수들은 룰보다 심판 눈치만 보게 된다"고 비유했다.

이에 따라 정책대응은 미뤄진 채 상황논리에 따라 임기응변이 우선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고비마다 나온 정부의 해결책이라는 것들이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파국의 연기'라는 말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화물연대의 경우 노조가 아닌데도 사실상 산별교섭의 형태로 마무리짓는 바람에 앞으로도 분규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NEIS와 관련해서도 올해 말 다시 시행 여부를 결정짓기로 해 여진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원칙을 지키며 엄정 대응하자니 불안하고, 질질 끌려가자니 답답한 모습이다. 더 늦기 전에 원칙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내년 총선을 의식하는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지지세력에 대해 '바른 말'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면 안된다고 지적한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3金시대가 끝나면서 고정 지지층의 존재가 희박해지고 있다"며 "새 정부가 자신의 고정적 지지기반을 의식해 이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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