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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과학은 과학자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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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어 광우병 내성 소를 탄생시키고 2004년 2월에는 세계 최초로 인간의 체세포 핵을 여성 난자에 이식시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했다. 2005년 5월에는 세계 최초로 실제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하여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등 차례로 신기원을 열어갔다.

이런 훌륭한 업적이 어느 날 갑자기 윤리 문제에 부딪히고, 드디어 연구의 본질 문제까지 거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리 문제에 대해서는 황 교수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를 접했다. 남은 문제는 줄기세포 재검증을 둘러싼 논란이다. 이제는 이성을 되찾고 냉정하게 이 사태를 수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해결 방안을 놓고 일부는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황 교수가 밝힐 것은 떳떳하게 밝히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여기에다 "제3 기관의 검증을 통해 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황 교수팀은 "더 이상 재검증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두 열차가 제동 장치 없이 마주보고 질주하는 안타까운 양상이다. 이제 파국을 막으려면 고장 난 제동 장치를 점검하고, 정부나 과학계 원로들이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할 때다. 훌륭한 과학자 한 사람을 탄생시키기는 엄청나게 어렵다.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세계적 수준의 과학자를 배출했다. 이제는 그가 더 좋은 성과를 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과거 과학계의 사기 사건은 몇 차례 있었으나 모두 과학자들의 손에 의해 밝혀졌다. 89년 3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유타대학의 상온핵융합 반응 실험도 그 예에 해당된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연구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다른 학자가 연구한 것을 되풀이하여 그 지식을 내 것으로 습득한다. 이 과정에서 그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다. 만약 논문에 나온 방법대로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최초 발표자에게 입증을 요구하거나 재실험을 주문한다. 과학계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일상화돼 있다. 이것이 검증이고 과학계의 자정기능이기도 하다.

상온핵융합 사건뿐 아니라 미국 벨연구소의 잔 헨드릭 쇤 박사의 부도체를 전도체로 바꾼다는 연구,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루시 테일야칸 박사와 랜슬레르 폴리테크의 리처드 레이 박사, 러시아의 로버크 니그마톨린 박사가 발표한 상온에서 초음파로 비커에 든 용액에 기포를 만들어 터뜨리면 핵융합을 일으킨다는 놀라운 연구도 모두 과학자에 의해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황 교수의 연구 성과는 이미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그 기술을 응용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은 중단하고 과학계의 일은 과학자들에게 돌려보내자. 우리나라 과학계는 이 정도 수준의 자정 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과학적 검증은 과학계에 맡기도록 하자.

이제 겨우 우리는 보물섬 지도 한 장을 손에 들고 있다. 본격적인 탐험은 이제 시작이다. 안타까운 것은 논문이 발표되는 순간 이 지도는 공지의 사실이 된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누가 더 빨리 보물섬에 도달하느냐다.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엉뚱한 곳에서 헤매거나, 쓸데없이 전력을 소진해선 안 된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황 교수팀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야 할 것이다.

박호군 인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