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끈끈한 가족관계'가 첫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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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평생을 전신마비 상태로 지내는 68세의 딸을 보살핀 1백1세의 어머니에게서 우리는 끝없는 자식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전신마비 아버지와 80대 할머니를 돌보면서 학교 생활을 성실히 하는 고교생에게선 부모 사랑을 엿볼 수 있다(본지 5월 7일자 29면, 5월 8일자 7면). 가정의 달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효(孝)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 방안을 생각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조셉 토인비(1889~1975)는 "한국 문화에서 앞으로 인류에 가장 크게 공헌할 게 있다면 바로 효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토인비의 말처럼 효 문화는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자산이다. 토인비가 우리나라를 다녀간 1970년대 초만 해도 세계적인 석학의 눈에 사랑이 넘치는 우리의 가족제도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산업화.정보화의 외길을 달려오는 사이 핵가족제도가 보편화하면서 부모와 자식 관계에 단절이 일어났다. 효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가족 사이에도 자기 이익이 우선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는 이루었지만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패륜 행위가 끊이지 않는 등 정신적으로 황폐화했다. 부모는 자식을 조건없이 낳아주고 길러준다. 또 누구나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데 조건이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은 효가 백가지 행실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유교의 인(仁)도, 불교의 자비(慈悲)도, 기독교의 사랑도 효로 귀결된다고 볼수 있다.

효는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한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효는 부모를 존경하는 것이며(尊親.존친),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不辱.불욕), 좋은 의식주로 편안히 모시는 것이다(能養.능양). 그러나 물질이 넘치고 노령화 시대로 치닫는 21세기엔 단절된 가족관계를 복원하는 데서 효가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정부 때문에 자식을 잃었다. 손자도 못 만나고 있다.정부의 복지제도는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있으니 현 제도를 폐지하라."

수년 전 스웨덴에서 양로원 노인들이 복지제도가 너무 잘돼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며 시위하는 현장에서 나온 말이다.

외로워서 못 살겠다는 스웨덴 노인들의 외침에서 21세기 효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다.

이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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