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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차웅아 미안해" 엄마는 아직도 소파에서 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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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조카를 잃은 최태현씨가 13일 전남 진도 팽목항을 거닐고 있다. 한때 조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기다리던 장소다. 조카 시신은 지난해 5월 4일 찾았지만 그는 “인양하겠다는 발표가 나와야 훌훌 털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팽목항에서 컨테이너 생활을 한다.
세월호 참사 1년. 곳곳에 새겨진 흔적은 그대로다. 세월호 사고 직전 찍은 학급 사진이 걸린 안산 단원고 2학년 7반 교실. 이 학급은 세월호 여행에서 학생 한 명만 돌아왔다.

지난 9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입구. 공터에 10여 개의 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세월호 실종자·희생자 가족들이 숙소로 쓰던 컨테이너다. 대부분 비었지만 아직도 여기서 사는 이들이 있다. 동생 재근(53)씨와 조카 혁규(7)군을 아직 찾지 못한 권오복(60)씨가 그렇다. 권씨는 사고 직후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에 내려와 1년 가까이 머무르고 있다. 이유는 “여기 있어야 하루라도 빨리 세월호가 인양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동생의 아내는 주검으로 발견됐고, 조카딸 지연(6)양만 구조돼 서울 막내고모(52) 집에서 산다. 세상 몰랐던 조카딸은 이제 어렴풋이 부모와 이별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고 한다. “가끔 어딘가에 전화해서는 이런 말을 한대요. ‘엄마 왜 전화 안 받아’라고.”

 9일 들른 그의 컨테이너 신발장 앞에 놓인 소주병 3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아직도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테이블엔 약봉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스트레스로 잇몸이 흔들리고 위장병이 생겨 먹는 약이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만 그런 게 아니다.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 최정수군의 삼촌 태현(46)씨도 컨테이너에서 산다. 지난해 5월 4일 차가운 몸으로 돌아온 조카를 만난 뒤 경기도 성남시 집에 돌아갔지만 일상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한 달 만에 다시 팽목항으로 내려온 지 10개월. 그는 “세월호를 끌어올리겠다고 공식 발표가 나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희생된 학생들의 책상에는 친구와 후배·추모객들이 종이학을 올려놓거나 꽃다발을 갖다 놓았다.

 안산에서도 힘든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첫 희생자로 발견된 정차웅군의 어머니 김연실(48·여)씨는 집으로 돌아온 뒤 계속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잔다. “침대에서 편안하게 자는 건 아들에게 미안해서”라는 이유였다.

 살아나온 학생들 역시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울어 가는 배 안에서 이리저리 넘어져 다친 몸이 아직 온전치 않고, 괴로운 마음 때문에 피부질환이나 천식 같은 온갖 병들까지 겹쳤지만 약은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몇몇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약 먹으면 배가 아프고 토하게 된다. 하지만 그걸 엄마가 알면 아파할까 봐 약은 먹지 않고 ‘점점 낫고 있다’고 얘기한다.”

 A양도 그렇다. 거의 90도로 기울어진 세월호에서 먼저 빠져나와서는 10여 명의 친구들을 끌어올리다가 허리를 다쳤다. 8개월 가까이 치료를 받다가 지난겨울 중단했다. A양은 이렇게 말했다. “나만 아프지 않으면 먼저 간 친구들한테 미안하잖아요.”

 트라우마를 떨쳐버리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월호 1년이 다가오면서 점점 많은 학생이 괴로움을 호소한다고 했다. 증상은 비슷하다. “사고 당시의 느낌이 자꾸 떠올라 자다 깨다 한다”는 것이다. 재앙에서 살아난 이들이 겪는 ‘주기적 트라우마’다. 생존 학생들에게는 여기에 고3 스트레스가 겹쳤다. 단원고 학생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김은지 마음건강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배상·보상 얘기가 많은데, 정작 심리 치료 계획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 현재 있는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는 5년 동안만 운영된다. 하지만 실제 트라우마는 그보다 오래 간다. 지속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지역 의료지원 시설이 필요하다.”

◆특별취재팀=임명수(팀장)·이찬호·전익진·최경호·최모란·최충일·최종권·김호·유명한 기자, 사진=최승식·강정현 기자, 프리랜서 오종찬 lm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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