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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고속열차 수출 길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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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프랑스 알스톰사 열차와 한국형 고속열차를 비교, 심사하는 평가위원 17명 중 외부 위원 11명은 각계 전문가 100명 중 입찰에 참가한 두 회사가 직접 추첨을 통해 뽑은 사람들이다. 그만큼 이번 심사 과정이 엄격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형 고속열차가 뽑힌 것은 성능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이번 입찰 성공으로 한국이 세계 네 번째로 자체 제작한 고속열차를 운행하는 나라가 되었지만, 사실 국내 고속열차 개발은 다른 나라에 비해 뒤늦은 편이다. 1964년 세계 최초의 고속열차인 신칸센을 운영한 일본, 81년 TGV를 개통한 프랑스, 91년 고속열차 ICE를 선보인 독일 등은 모두 자국 고속열차를 개발해 고속철을 운영했다. 그러나 한국은 고속철 건설 방침을 정한 뒤 7년이 지나서야 한국형 고속열차 개발에 착수했다.

한국형 고속열차의 상용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매우 크다. 한국교통연구원이 4월 발표한 '한국형 고속열차 실용화 예비 타당성 조사'에 따르면 상용화될 경우 향후 20년간 생산 유발 효과가 약 26조원, 고용 유발 효과가 1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직접 부가가치 창출 금액만 3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또 한국형 고속열차는 이번 입찰 성공으로 세계 고속열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고속철도 건설을 생각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동남아 등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한국형 고속열차가 그동안 시속 350㎞를 돌파하는 등 우수한 기술을 선보였는데도 해외 진출에 실패한 것은 '운행 실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철도 전문가는 "세계 철도 업계에서는 아무리 우수한 제품이라도 남이 실제 쓰지 않은 제품을 먼저 쓰는 모험은 하지 않는다는 관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이 2004년 중국 상하이에 자기부상열차를 팔면서 1억 유로라는 거액을 사례금으로 지급했던 것도 자기부상열차의 상용화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채남희 원장은 "중국.미국 측 관계자가 시속 350㎞ 돌파에 부러워하다가도 '그렇게 좋은 기술인데 너희 나라에서 왜 먼저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면 사실 답이 궁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세계 고속열차 시장은 프랑스와 일본.독일 3국이 장악하고 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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