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1·2·3대 비서실장 등장에 당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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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0일 ‘성완종 리스트’에 직격탄을 맞은 청와대는 하루 종일 뒤숭숭했다. 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금품 리스트’에 현 정부의 1·2·3대 비서실장인 허태열·김기춘 전 실장, 이병기 현 실장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다. 게다가 이완구 국무총리, 부산시장(서병수),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의원 등 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들까지 거명되자 전전긍긍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워낙 사안이 민감해 불똥이 어디로 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허태열·김기춘 전 실장이 돈을 받았다는 보도에 대해 “아는 바 없다”(민경욱 대변인)며 공식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 들어 성 전 회장 시신에서 발견된 메모지에 이병기 실장의 이름까지 적힌 것으로 나오자 민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열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한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섭섭했던 것 같다”며 적극 반박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언론 보도를 통해 소식을 접한 후 이날 수시로 보고를 받으며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청와대는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정윤회 문건 파문’처럼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야당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경우 2007년 대선후보 경선 전후 자금전달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지난해 말 불거진 정윤회 문건 파문의 여파에서 벗어나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개혁 등의 과제에 매진하고 있는 시점에 악재가 불거져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도 크다고 한다.

한 참모는 “성 전 회장이 이미 고인이 된 데다 검찰이 수사를 해 사실을 밝힐 수 있을지 불확실해 실체를 밝힐 방법조차 묘연한 상황이 걱정”이라며 “정윤회 문건 파문 때와 마찬가지로 실체와 상관없이 의혹이 재생산돼 민심이 싸늘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구명 운동은 이 정부에 맞지도 않고 그런 분이 돌아가시며 주장한 사실을 규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위한 근거 없는 의혹 확산은 더 이상 안 된다”고 말했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 성 전 회장이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하면서 ‘돈 얘기가 검찰에 흘러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은근히 협박한 일이 있다”며 “여권 실세들이 자신의 구명 요청을 거절하자 혼자 당할 수 없다는 심정에서 한 근거 없는 주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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