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 확인 없이 도청 내용 공개되면 정치적으로 악용될 위험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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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권리와 도청 내용 공개는 관련 없어"=법원은 도청 내용이 유출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헌법에 보장된 사생활의 자유와 인격권 등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장성원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도청 테이프와 녹취보고서의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 도청 대상자인 개인과 기업의 명예가 침해되는 것은 물론 국민이 정보기관을 불신하게 돼 국가기관 전체의 공신력이 추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기관의 합법적인 정보 활동에까지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결국에는 정보 수집 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청 자료의 내용 중 상당부분은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운 진술이거나 첩보.풍문 등에 불과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실관계 확인 없이 도청 내용이 공개될 경우 공개자의 의도에 따라 조작.편집.왜곡되거나 정치적으로 부당하게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장 판사는 "도청 자료가 범죄나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이해 당사자에게 유출되면 미리 관련 증거를 없애거나 향후 도청에 관계없이 적법하게 진행될 수사나 재판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불법으로 취득된 정보라는 이유로 관리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정보 수집 과정에 불법이 개입됐더라도 수집된 정보와 자료를 관리하는 사람이 이를 임의로 반출했다면 새로운 불법성이 생긴다"며 "취득 과정의 불법으로 인해 누설 행위의 불법성이 없어진다는 논리는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불법 도청 내용도 직무상 비밀"=공씨는 불법 도청은 국정원 '본연의 업무'가 아니었고, 누설한 정보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해 불법적으로 얻은 것이므로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 판사는 불법 도청이 공식적인 지휘체계하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이뤄진 점 등을 들어 "사실상 직무 수행 과정에서 얻은 직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비밀의 취득 경위가 불법이라도 내용이 알려지면 국익이나 공익을 해칠 수 있는 만큼 비밀로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 MBC 보도도 사법처리 대상 될 듯=도청 대상이 된 당사자들의 실명이나 도청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지 말라는 법원의 가처분결정을 어기고 보도를 강행한 MBC 특별취재팀 관계자 등에 대한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MBC 특별취재팀은 당시 박인회씨에게서 넘겨받은 자료를 토대로 불법 도청 내용을 보도,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이상호 기자는 박씨에게서 불법 도청자료를 넘겨받는 대가로 1000달러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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