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판단 재판에 반영 … 사법부 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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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강의실 같은 독일 법정
원형 구조로 된 독일 뮌헨지방법원 법정 모습. 판·검사와 변호사들의 책상 높이가 비슷해 대학 강의실을 연상케 한다. 한국 법정에선 판사석의 자리가 높이 설치돼 있다. 하재식 기자

지난달 2일 오전 10시 독일 뮌헨지방법원 101호 법정. 검은색 법복을 입은 판사 세 명과 평상복 차림의 시민 참심원 두 명이 법정에 들어섰다. 이어 올 1월 전기끈으로 목졸려 살해된 동성애자 패션디자이너(64) 사건의 첫 재판이 열렸다. 아랍계 피고인(25)은 "서로 다툰 적은 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고 범행을 부인했다.

이날 피고인과 변호인, 검찰은 5시간 동안 진실 공방을 벌였다. 참심원들은 피고인에게 질문하지 않고 재판을 경청했다. 피터 보이에 검사는 "참심원도 재판장 허가를 받아 질문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2007년 도입되는 '국민참여 재판'은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와 형량을 판단하도록 한 제도다. 미국식 배심제와 독일식 참심제를 절충했다. 본지는 10월 19~25일 미국 뉴욕 주법원과 워싱턴 시법원, 지난달 2~4일 독일 뮌헨지방법원을 현장 취재했다.

◆ "재판 참여 통해 사법부 견제"=참심제는 판사들과 함께 시민이 재판 하는 제도. 독일은 1877년 처음 시행했다.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려면 판사.참심원 중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참심원은 선고에 앞서 열리는 평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참심원으로 선발되면 1년에 8~10회가량 재판에 출석하며, 교통비와 시간당 5유로(약 6000원)의 수고비를 받는다.

뮌헨지방법원 바이어 라인홀드 판사는 "독일에서 참심제는 시민이 사법부를 견제하고,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는 판결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처음으로 참심원에 뽑힌 오셀만 기젤라(여.지멘스사 근무)는 "회사에서 이해해 주기 때문에 생업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며 "재판 참여에 따른 위협이나 회유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심원들의 참여가 형식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바이에른주의 빌란드 호른 변호사는 "판사 세 명, 참심원 두 명으로 구성되는 재판부의 경우 일반 시민들이 판사의 결정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뮌헨지방법원 요세프 크라흐 판사는 "참심제는 판사를 견제하기 위해 생긴 제도"라며 "요즘엔 미디어의 사법부 견제가 활성화돼 참심제 필요성이 과거보다 줄었다"고 말했다.

◆ "고비용.비효율 비판받는 배심제"=배심제는 배심원단 12명이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법관은 형량만을 정하는 제도다.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시 지방법원 216호 법정. 마약 판매 혐의로 기소된 흑인 남녀 두 명에 대한 공판이 진행 중이었다. 재판에는 두 사람을 체포한 경찰관 세 명이 나와 증언을 했다. 변호인들은 경찰관들에게 체포 과정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배심원단은 예비 배심원 2명을 포함, 14명의 배심원단으로 구성됐다. 여자 8명에 남자가 6명, 흑인과 백인이 각각 절반이었다.

재판이 길어지고 배심원의 선입관과 편견이 판결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돈 많은 피고인이 재판에 유리하다는 점 등은 배심제의 단점이다.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은 배심제의 또 다른 그늘이다. 미국은 배심재판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워싱턴 경찰국 조셉 오(40) 형사반장은 "경찰이 10년형을 선고받을 범인을 10명 잡았을 경우 5명은 플리바게닝을 통해 1년6개월만 감옥에 있다 석방된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배심제의 취지에는 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뉴욕주 형사법원 빈센트 주디스 판사는 "배심제는 자신과 동등한 시민들로부터 재판을 받는다는 민주주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며 "일부 부작용은 민주 사회에 사는 비용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 특별취재팀=김종문.하재식.김현경 기자 후원 : 한국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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