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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친화적인 소득주도 성장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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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우스개 소리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 얘기다. 바꾸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을 때 바꾸는 건 진보, 바꿔야 할 이유가 있을 때만 바꾸는 건 보수란다. 이런 보수와 진보가 엊그제 토론회를 열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을 놓고서다.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는 국가미래연구원, 합리적 진보를 내건 좋은정책포럼이 나섰다. 선공은 진보였다. 뼈대는 양극화의 심화였다. 10%의 상위 소득층이 국민소득 45%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소비부진은 당연하다고 했다. 저소득일수록 소비성향은 더 높다는 전제하에서. 이런 구조를 타개하지 않고선 저소비와 저성장을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게 소득주도 성장이다. 시작은 임금 인상이다. 소득을 늘려 소비를 증대하고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거다.

 과연 그럴까. 보수가 들고 나온 건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이다. 글로벌 무한경쟁과 급속한 기술혁신 시대에 경쟁력이 우선돼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졸면 죽는 세상에서 임금만 강조하고 경쟁력은 고려하지 않는 소득주도 성장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했다. 2017년 대선의 화두가 무엇일지도 상반됐다. 진보는 양극화의 심화, 보수는 성장의 위기가 될 걸로 전망했다.

 미국 자동차왕 헨리 포드를 둘러싼 논쟁은 양측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다. 1914년 헨리 포드가 시간당 임금을 2.4달러에서 5달러로 올린 데 대한 해석의 차이다. 좋은정책포럼 김형기 대표는 “임금을 올려 가계소득을 늘렸기 때문에 자동차를 많이 팔 수 있었다”고 했다. 반면 국가미래연구원 김광두 원장은 “그때 일본 도요타가 있었다면 포드가 임금을 올릴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나는 김 원장의 해석에 동의한다. 포드가 임금을 올린 건 그만한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컨베이어벨트라는 조립라인제와 부품 호환제를 세계 최초로 채택해 경쟁업체들보다 원가가 월등하게 낮았다. 경쟁자를 밀어내 독점기업이 되려는 의도도 있었다. 실제로 임금 인상에 동참한 경쟁업체들 다수가 파산했다. 이들이 후일 GM으로 뭉치기까지 20여 년간 자동차는 포드의 독무대였다.

 소득주도 성장을 성장 담론으로 보기 힘든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지속 가능성도 문제지만 어떻게(how-to)에 대한 해법이 없어서다. 누구의 임금을 얼마나 올려야 소비에 도움 될까.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임금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낮지 않다. 구매력 환산 기준으로 따진 1인당 실질임금은 오히려 일본보다 많다. 실질임금 증가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나라다.

 그런데도 임금인상 얘기가 계속 나오는 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이 100원 받을 때 그들은 40원밖에 못 받는 시스템이라서다. 게다가 이들의 소비성향은 상대적으로 높다. 임금을 올려 소비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라면 이들의 임금 인상이 관건인 까닭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임금을 올릴 여력이 별로 없다. 대기업만 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임금 상승 압력이 먹혀들면 양극화는 더 커진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상된 임금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게 흘러들게 하는 방안에 대한 해답과 실행이 먼저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론에선 이런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 쪽이 명쾌한 설명을 내놓는다. 노동개혁과 경제민주화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하고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근절해 중소기업을 강소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성장보다 양극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게다가 인구 5000만 명의 소규모 경제에서 소비 증대는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덩치를 더 키워야 할 처지다. 경제규모가 세계 1~3위인 미국과 중국, 일본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여건 때문이다. 사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독도 문제 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소득주도 성장이 경쟁력 친화적인 담론이 돼야 하는 이유다. 복지가 성장 친화적 복지가 돼야 하는 것처럼.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