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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투표권으로 잉글랜드 정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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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런던특파원

다음 달 7일 영국의 새 정부가 결정됩니다. 한 달이나 남지 않았느냐고요? 여긴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40일에 가깝습니다. 이제 1주일이 지났군요.

 쏟아지는 정치 보도를 보며 ‘사람이 하는 일이라 비슷하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 찍으면 결국 △△△ 돕는 것”이란 주장입니다. 이른바 사표(死票) 방지 논리입니다. 소선거구제에서 양당제가 견고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도 이 말을 듣습니다. 보수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과 좌파 성향의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을 두고섭니다. 보수당에선 “UKIP에 투표하고 잠들었다 깨 보면 노동당이 돼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스코틀랜드 노동당은 “SNP 찍으면 보수당을 돕는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전례 없이 UKIP와 SNP가 강해서인데 위협적인 건 SNP 쪽입니다. UKIP는 전국적으로 13% 지지를 받는 3위 정당입니다. 영국도 소선거구제라 이 정도론 누굴 안 되게 할 순 있어도 자신이 당선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현 추세라면 한 자릿수 의석(전체 650석)을 건질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SNP는 스코틀랜드 몫인 45석 대부분을 싹쓸이한다는 예상입니다. 과거 스코틀랜드는 노동당의 아성이었습니다. 지방선거엔 SNP에 투표해도 총선에선 노동당을 지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독립투표 이후 기류가 달라진 겁니다. 노동당으로선 어마어마한 타격입니다.

 현재로선 보수당도, 노동당도 과반을 기대하기 어려워 연정(聯政)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럽 정치 하면 연정부터 떠올릴 텐데 그 유럽에 영국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영국의 소선거구제는 강력한 과반 정당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현 보수당·자민당 연정 정부 이전까진 그랬습니다. 마거릿 대처나 토니 블레어가 가능했던 이유입니다. 영국인은 연정을 싫어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SNP의 약진이 웨스트민스터를 뿌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연정 불필요 정치’가 ‘연정 필연 정치’로 바뀌는 영국사적 전환기인지 모릅니다. 그나마 보수당·자민당은 이번에 한번 해보기라도 했습니다. 노동당은 2차대전 전시내각 이후 전무합니다. 정치인들이 수세대에 걸쳐 익숙해진 관념·관행과 이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SNP의 스코틀랜드 독립이란 당 정체성도, 지지자 비율은 인구의 3%대에 그치는데도 40여 석을 차지하는 과다 대표성도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영국 전체의 이익과 거리가 있는 듯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게 뚜렷해섭니다. 오죽하면 “스코틀랜드가 총칼로 실패했던 잉글랜드 정벌을 투표권으로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어떤 제도든 그 목적을 다할 때가 옵니다. 영국은 이 도전을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