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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엮어 보기] 서거한 리콴유가 한국에 던지는 질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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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시사월간지 아틀란틱(The Atlantic)은 지난달 30일 ‘리콴유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지난달 23일 사망했으니 일주일 쯤 지난 시점이었다. 리콴유 사망 후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 리콴유를 집중 조명했기에 새로울 건 없었다. 하지만 기사가 눈에 띄는 건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리콴유의 업적에 대한 칭송도, 리콴유의 독재에 대한 비판도 아닌 리콴유로부터 미국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아틀란틱은 기사에서 정부 통치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3가지가 주로 쓰인다고 언급했다. ?첫째, 민주주의 정도와 시민 참여 그리고 시민의 정치적 권리 수준. 둘째, 정부의 이슈대처능력과 정책 수립의 효율성 그리고 부패 방지 능력. 셋째, 소득·건강·안전 등 국민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이어 지난 50년간 미국·싱가포르·필리핀·짐바브웨의 수치를 비교했다. 필리핀은 미국이 민주주의를 가르쳐준(tutoring) 국가이고, 짐바브웨는 싱가포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몇년 후 독립해서 로버트 무가베가 독재를 해온 나라다. 4개 나라에 대한 비교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싱가포르의 상대적 위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비교다. 월드뱅크의 통계를 보자 (표 첨부)

싱가포르는 지난 50년간 1인당 GDP가 12배 증가했다. 1인당 GDP는 약 500달러에서 5만 5000달러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과 필리핀의 GDP는 약 2배 정도 올랐고, 짐바브웨는 오히려 떨어졌다. 아틀란틱은 21세기에는 싱가포르가 미국보다도 더 나은 결과물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지난 15년간 미국은 2%미만의 성장을 보인데 반해 싱가포르는 평균적으로 거의 6%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여줬다. 한국의 경우 1965년 1인당 GDP는 105달러였고 2013년 2만 5977달러까지 올랐다. 지난해는 2만 8739달러였다. 배율로 따지면 28배 증가다.

싱가포르는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스위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3위였고, 한국은 144개국 중 26위였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20위권 안에 들었지만 정책제도 82위, 노동시장 효율성 86위, 정부 정책결정 투명성 133위에 그쳤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트 유닛(EIU)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지난 7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국가로 꼽혔다. EIU는 싱가포르 경제의 개방성과 효율성, 정부의 기업 친화정책, 낮은 법인세율(17%), 비즈니스 법률 인프라, 낮은 부패도 등을 강점으로 꼽았다. 미국은 같은 평가에서 7위였고 한국은 28위에 불과했다.

의료시스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의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7.3명에서 1000명당 2.2명(2013년)까지 떨어졌다. 미국의 1/3에 불과한 수치다. 필리핀은 아직도 1000명당 23명이고, 짐바브웨는 1000명당 55명(2012년)이다. 2012년 블룸버그가 매긴 순위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전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국가로 꼽혔다. 미국은 33위였고 필리핀은 86위, 짐바브웨는 116위였다. 싱가포르는 범죄율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미국의 살인율은 싱가포르보다 24배나 높다. 2012년 조사에 의하면 1% 미만의 싱가포르 국민들만이 집이나 식량문제로 고통을 받는다. 이 또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의료시스템은 한국도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범죄율도 강력범죄비율은 1990년대 이후 급격히 낮아졌다. 외국인들은 서울이 밤에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도시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싱가포르 정부의 효율성도 세계적이다. 월드뱅크가 매년 발표하는 정부관련 지표(정부 효율성, 규제의 질, 법적 안정성, 부패의 정도)를 보면 싱가포르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10위 안에 들어간다. 미국은 꼴지에서 20번째 정도에 불과하고 필리핀과 짐바브웨는 뒤에서 3번째다. 2014년 갤럽의 세계 조사에 따르면 85%의 미국 국민이 정부의 부패가 만연하다고 응답한 반면에 싱가포르는 8%의 국민들만 정부가 부패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이 가장 뒤처지는 부분이다. 정부는 꾸준히 혁신과 개혁을 말하지만 한국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깊다. 특히 세월호 사건 이후 불신감은 더 깊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앞서 언급한 경쟁력 순위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의 경쟁력을 감소시키는 많은 부분이 정부 영역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 참여와 개인의 자유 같은 부문이다. 프리덤 하우스의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되지만 싱가포르는 중위권이다. 한국이나 필리핀보다도 낮은 순위다. 리콴유의 정당(PAT)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이유다. 보고서는 싱가포르의 직접 민주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정치적 영화나 방송이 금지되고 법원까지 정당이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 밖에 싱가포르의 살인적 물가도 많이 지적받는 부분이다. 싱가포르는 2년 연속 세계에서 생활비가 가장 많이 드는 도시로 꼽혔다. 뉴욕을 기준으로 식료품가격은 11% 비싸고 교통비는 3배 높으며 자동차 등록세도 높다.

아틀란틱은 이런 상반된 지표가 결국 근본적인 ‘과연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정치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미국이나 서양에서는 시민의 정치적 권리에 주목했지만, 리콴유는 “정치 제도의 근본적인 가치는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을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는가”에 있다고 했다. 인디펜던트지도 지난주 칼빈 챙의 말을 빌려 “자유는 아침시간에 얼마나 문제 없이 거리를 걸을 수 있는지, 얼마나 두려움 없이 문을 열어 줄 수 있는지, 여성이 버스나 기차를 혼자서 타는데 문제가 없는지, 해진 후에 지하철을 타는 걸 꺼리지 않는지와 관련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역사는 독재자가 선의를 가졌더라도 그 선의가 지속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독재가 효율적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사례는 지난 50년간 싱가포르 국민들이 더 건강하고, 안전하며, 부유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틀란틱은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시도된 모든 다른 형태의 정치체제를 제외한다면 최악의 정치체제”라는 처칠의 말이 옳다면 싱가포르는 어떤가? 라고 질문한다. 우리는 여기에 또 하나의 질문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리콴유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교는 정당한 것인지 또 한국과 싱가포르는 어떻게 다른 길을 걷고 있는지.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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