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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사 교과서, 콘텐트 부실이 더 문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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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 02면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해묵은 이념 논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촉발됐던 교학사발(發) 교과서 편향 문제가 최근의 법원 판결을 계기로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서울행정법원은 금성·천재교육 등의 고교 역사 교과서 6종에 대해 “교육부가 내린 수정 명령은 적법하다”고 지난 2일 판결했다. 오해 소지가 있는 표현을 바로잡아 학교 현장의 혼란을 없애려면 수정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응은 극명히 갈린다. 보수 진영은 환영하고 반대편은 반발한다. 해당 교과서 집필자들은 항소 뜻을 밝혔다.

 핵심은 두 가지다. 이번 판결이 역사 왜곡과 편향성을 잡는 적절한 조치였는가, 아니면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과도한 통제인가이다. 수정명령을 받은 교과서를 뜯어보면 두 관점이 혼재돼 있다. ‘박정희 정부의 개발 정책이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내용이나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도발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 등이 그 예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선 2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고 도발 주체를 밝히는 게 타당하다. 기존의 서술로는 청소년들에게 자칫 특정 정파에 대한 반감이나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음모론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집필자들은 “학자의 역사인식마저 재단하는 과잉 판결”이라고 주장한다. 인용부호 안의 말만으론 일리가 있으나 그게 교과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교과서의 이념화를 경계한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랑케가 말했듯 ‘있는 그대로의 팩트’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사학자의 책무 아닌가. 역사를 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기본은 팩트여야 한다. 역사 기술은 사실성·객관성·투명성에 그 생명력이 있다. 더구나 청소년의 정체성과 국가관에 큰 영향을 주는 교과서는 더 단단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교육현장과 학계에선 이념 논쟁이 요란할 뿐 콘텐트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술만 봐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학사 교과서의 경우 “일제는 1930년대 초부터 젊은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끌어가 성 노예로 삼았다”는 달랑 한 문장에다 ‘위안부 소녀상’ 사진 설명이 고작이다. 다른 교과서도 도토리 키 재기다. 상당수 교과서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술마저 빼먹었다.

 집필자 가운데 학문적 업적이 뚜렷한 권위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그렇다면 역사인식보다 집필 능력의 문제 아닌가. 부실 교과서에 대한 근본 책임은 물론 교육부에 있다. 문제의 교과서는 민간출판사가 제작해 정부 승인을 받은 검정(檢定)인데 부실에 도장을 찍어준 당사자가 교육부다. 적확성·객관성 등의 결함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이념·부실 논란을 부른 것이다.

 이념보다 더 중요한 콘텐트를 강화하려면 시스템 정비가 절실하다. 우선, 정권의 성향에 휘둘리지 않을 독립적 역사기구가 필요하다. 전문성·중립성을 보장하고 사관(史觀)의 중심을 잡도록 하자는 것이다. 둘째, 심의 과정을 강화해 애초 출판사의 구성물부터 깐깐히 봐야 한다. 위안부 서술의 경우 그런 과정이 없었다. 이게 교육 과정상 2018년에나 반영할 수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셋째, 국정(國定) 전환 논의는 금물이다. 교육부는 이참에 직접 교과서를 만들려는 의도지만 이는 수십 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리는 일이다. 국정은 베트남·북한 등이나 하는 방식이다.

 학계의 자성도 필요하다. 이념 논쟁에 열 올리는 교수 눈엔 공부에 억눌린 아이들의 고통이 안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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