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걱정 끝 … "나무, 너무 빽빽해 솎아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강원도 태백산맥 일대에 빽빽하게 들어찬 산림. 고려대 이우균 교수는 “산림 과밀화로 활용도가 낮기 때문에 1% 미만인 벌목 비율을 5~8%까지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이우균 교수]

“우리의 후손들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10년 동안 고생을 해서 울창한 산림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도록 합시다.”

 1973년 4월 5일 경기도 양주군 백봉산(지금의 남양주시에 위치)에서 열린 식목일 기념 나무심기 행사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한 말이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무가 없어 벌건 흙을 드러낸 민둥산을 전국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73년 3월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전국의 100만㏊ 넓이 산지에 나무 21억3200만 그루를 심는다는 대규모 조림계획이었다.

 46년 식목일이 제정된 지 69년 만에 상황은 반전됐다. 이제는 산림(山林)에 나무가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3일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이우균 교수팀과 한국임업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실시한 제5차 국가산림자원조사 결과 산림의 절반 이상이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있는 적정 생육밀도를 초과해 과밀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팀은 최근 10여 년간 강원도 지역 태백산맥 일대에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산림의 62%가 과밀 상태였다. 또한 산림의 평균 밀도도 1.297로 적정치보다 높았다. 나무 1000그루가 있어야 할 곳에 1297그루가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참고하고 있는 ‘임분수확표’는 이런 상황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분수확표는 우리나라 주요 수종(樹種)의 나이대와 밀도, 나무가 자라고 있는 주변 토양의 성분 등을 분석한 자료다. 이번 연구팀 조사에서 기존 임분수확표에 제시된 통계는 현재 산림의 58~79% 정도만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한다. 이 교수는 “기존 자료는 민둥산으로 뒤덮인 60~7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당시보다 수종이 다양해지고 울창해진 산림 상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 “임분수확표가 정교해지면 체계적인 산림 관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나무를 말라죽이는 재선충 피해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숲이 고령화돼 간다는 점도 드러났다. 표본 조사 결과 소나무 중 78%가 심은 지 35년 이상 된 것이었다. 이 교수는 “인간 사회로 비유하자면 인구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데다 고령화를 대비해야 하는 단계”라며 “이제는 나무를 심는 것보다 베어내고 활용하는 쪽으로 산림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임업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 산림의 연간 벌목 비율은 재적(단위 면적당 목재가 차지하는 부피) 대비 0.87%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시뮬레이션 결과 이러한 속도가 지속되면 2045년부터 숲의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돼 2060년에는 산림의 45%를 한꺼번에 베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며 “벌목 비율을 매년 5~8%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업진흥원 조현국 박사도 “산림이 안정되면 생장률이 떨어져 탄소 흡수량이 적어진다”며 “나무가 빽빽한 산은 물을 지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북유럽 등 대표적인 목재산업 국가들이 체계적인 벌목을 하는 이유도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조 박사는 “책상 등 나무로 만든 제품은 안에 탄소를 저장하고 있고, 플라스틱이나 철강 등 탄소를 배출하는 공장 가동을 일부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된다”며 “우리나라 목재는 상점·식당·사무실 등의 인테리어 및 장식품 소재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