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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박태환 "국민께 사죄, 수영만 알던 제가 약쟁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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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영선수 박태환입니다. 늘 좋은 모습, 웃는 얼굴로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로 인사를 드리게 돼 말로 다할 수 없이 죄송하고 무거운 마음입니다.

우선 부족한 제게 늘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죄송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합니다.

지난 23일 FINA(국제수영연맹) 청문회는 올림픽 무대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살면서 가장 긴장되고 힘든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도핑 양성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지난 10년간 거의 매월 도핑테스트를 받았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분명 뭔가 잘못 나온 거라 생각했습니다. B샘플 양성반응을 최종 확인한 후에는 제가 알고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이해받고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올림피안으로서 병원을 찾아가고 약물을 처방받는 전 과정에서 스스로 좀더 체크를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후회합니다.

청문회에서도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부분은 '왜 너같은 선수가 네 몸에 그런 성분이 들어오는 것을 방치했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고의성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이번 발생된 결과에 대해 반성합니다.

수영장 밖의 세상에 무지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과정이 어찌 됐든 저의 불찰입니다. 다시 한번 이번에 발생된 결과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도핑 사실을 알게 된 후 지난 몇 개월은 매일매일이 지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 병원을 가지 않았더라면, 주사를 놓지 못하게 했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후회하고 자책했습니다.

수영 하나만 알고, 수영 하나로 사랑 받아온 제가 수영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제가 얼마나 부족한 선수인지, 인간적으로도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그럼에도 얼마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는지 생각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저 혼자만의 능력이 아닌 국민들의 응원으로 여기까지 왔음을 압니다. 잘할 때나 못할 때나, 한결같이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실망을 안겨드린 점 거듭 사죄 드립니다.

고통을 나눠진 채 자식이 행여 맘 다칠까 제 앞에선 대놓고 울지도 못하는 가족과 애써 괜찮다고 잘될 거라고 말씀해주시는 수영연맹에도 그저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 많은 팬 분들과 미디어 여러분께 진작에 사죄 드리고 모든 것을 털어놓지 못한 점도 죄송합니다. FINA의 기밀유지 조항 때문에 마음과 달리 더 빨리 사죄드리지 못한 점,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한 점, 더 마음을 열지 못한 점도 사과드립니다.

어떤 비난도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깊이 자숙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내년 3월2일, 징계가 끝난 후에도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FINA에서는 올림픽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솔직히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2004년 열다섯살, 태극마크를 처음 단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약물에 의존하거나 훈련 이외에 다른 방법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가까운 분들은 지난 10년간의 모든 영광들이 물거품이 되고, 모든 노력들이 '약쟁이'로 치부되는 것에 대해 억울하지 않냐고 이야기합니다. 보란 듯이 재기하라는 말씀도 해주십니다. 또 어떤 분들은 도핑에 걸린 선수가 따오는 메달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씀도 합니다. 모든 말씀을 깊이 새겨듣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평생 스스로 감당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로서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제가 지금 여기서 '미래'를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후 일정은 수영연맹 및 가족들과 충분히 논의해, 시간을 갖고 결정하겠습니다.

다섯살 때 처음 수영을 시작한 후 단 한번도 수영이 없는 삶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고, 가장 가슴 아픈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수영을 하면서'였습니다.

수영선수로 사는 것이 힘들어도 가장 행복했습니다. 수영선수로서 자격을 상실하는 18개월은 제게 아마도 가장 힘든 시간이 될 것입니다. 수영선수로서 당연히 누려온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제가 가졌던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고 봉사하는 시간들로 채워가겠습니다.

올림픽이나 메달이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외로운 순간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기흥 대한수영연맹 회장님, 정일청 전무님, 김지영 대한체육회 국제위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무엇보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함께 사력을 다해 메달을 따냈던 선관이, 규철이, 규웅이, 준혁이 정수, 기웅, 성겸이 등 후배선수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제 이름을 딴 박태환수영장을 만들어주시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신 인천시청 관계자 분들께도 죄송합니다. 국민 여러분과 팬 여러분께도 평생 갚지 못할 큰 빚을 졌습니다.

수영선수 박태환에게 주신 사랑과 믿음도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깊이 사죄 드립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사진 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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