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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터널 뚫을 때 나온 돌, 조선 성곽의 역사를 잇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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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호선 지하철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한양도성 남산구간까지는 5분 거리다. 장충체육관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오른편으로 우뚝 솟은 성벽이 보인다. 6차선 동호로에 가로막혀 서쪽으로 이어나가지는 못하지만 사람 키를 훌쩍 넘고 수직으로 뻗은 도성의 기세에 압도된다. 성벽을 오른쪽에 끼고 언덕을 오르는 바깥길엔 1980년대 골목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다.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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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충동과 다산동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도성길은 요즘 인기다. 한양도성 옆에 난 봄나물을 캐던 김선자(74·여)씨는 “주말이면 사람들이 많아 조용하게 지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20분 정도 오르자 성벽 곳곳에 모자이크처럼 하얀색 화강암이 박혀있다. 1970년대 이후 이뤄진 도성 복원의 흔적들이다.

 성곽길은 자유총연맹·타워호텔(현 반얀트리호텔)로 연결되지만 이곳에 도성은 없다. 한양도성 성돌 일부가 자유총연맹과 타워호텔 축대에 남아있다. 자유센터와 타워호텔 건설을 지휘한 건축가 김수근이 한양도성 일부를 헐어내고 여기에서 나온 성돌을 축대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2007년 문화재청 조사에서 밝혀졌다.

70년대 한양도성 복원 당시 찍은 사진. 돌을 나르는 인부 뒤로 남산 팔각정이 보인다. [사진 서울시]

 남산길 건너 국립극장부터는 본격적인 산행 코스가 이어진다. 장충체육관~자유총연맹 구간과 달리 거무 튀튀한 성돌이 많이 보인다. 답사에 동행한 한양도성도감 신영문 학예사는 “남산에서 채굴한 돌은 편마암과 화강암이 5대 5”라고 설명했다. 화강암이 주로 쓰인 인왕산 구간과 달리 전체적인 성벽의 색깔이 짙다는 설명이다. 편마암은 다른 암석에 비해 검고 무르다.

 국립극장을 지나 나무계단길을 오르자 오른쪽으로 성벽 모습이 펼쳐진다. 곳곳에서 배부른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성돌이 무게에 눌렸기 때문이다. 편마암이 많이 쓰인 남산구간(4.2㎞) 중 남산지구와 장충지구 2.6㎞ 성벽은 70년대 후반에 정비됐다. 남산3호터널 공사 현장에서 나온 석재 7000㎥가 사용됐다. 조선 시대 남산에서 채굴한 돌로 성벽을 쌓아 올린 것처럼 남산에서 나온 돌로 성벽을 정비했다는 기록은 당시 서울시 공문서에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남산구간을 걷다 보면 아쉬움이 크다. 여장(女墻·몸을 숨겨 적의 공격을 피하는 성벽 위 공간) 대부분이 콘크리트와 돌로 만들어져서다. 제대로 된 고증과 도면 없이 쌓기에 바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당시 복원하지 않았다면 도성의 원형 보존이 더 힘들었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손영식 문화재위원은 “한양도성 남산구간 중 고증이 어려웠던 태조 때 여장정비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박상빈 서울시 한양도성연구소장은 “당시 장비와 예산,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하면 완벽히 잘못 복원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유네스코 등재 등을 앞두고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70년대 복원도 한양도성이 겪어야 했던 시대상 중 하나가 아닐까.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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