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모니아 뿜는 공장 옆 65억 산책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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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 면적은 축구장(약 7000㎡)의 20배가 넘는 15만460㎡. 이 위에 공원을 만드는 데 198억5000만원이 들었다. 그럼에도 방문객은 하루 평균 20명이 채 안 된다. 무료 공원인데도 그렇다. 경기도 이천시가 이천쌀을 널리 알리겠다는 목표로 지난해 11월 준공한 ‘이천농업농촌테마공원’ 얘기다. 일요일이고 낮 기온이 섭씨 18도까지 오른 지난 22일도 오후 내내 다녀간 관람객이 30여 명이었다.

 공원을 추진한 조병돈(66) 시장은 연간 방문객이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방문객은 문 연 뒤 4개월 동안 약 2000명이었다. 연간으로 따져 6000명이다. 이천시 중심부에서 뚝 떨어진 논밭 한가운데 있어 교통이 편치 않은 데다 별 즐길거리가 없어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는다. 22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가족과 함께 이곳에 온 김영호(41)씨는 “모처럼 찾아왔는데 볼거리·즐길거리가 없다”며 “세금을 퍼부어 그저 만들어 놓기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세금 낭비가 여전하다. 무상보육을 비롯한 각종 복지에 짓눌려 돈이 없다면서도 시민·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시설을 만드는 데 돈을 쏟아붓고 있다.

 대구시 서구는 달서천 2.2㎞ 구간에 산책로를 꾸미는 중이다. 서중현(64) 전 구청장이 서울 청계천을 본떠 휴식·산책공간을 꾸미겠다며 추진했다. 사업비를 125억원으로 잡고 2012년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서구민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140개 공장이 들어선 대구염색공단이 산책로 바로 옆에서 냄새 나는 ‘암모니아’를 뿜기 때문이다. 서구민 최성진(37)씨는 “질러갈 일이 있어도 냄새 때문에 돌아가는 곳인데 누가 산책하러 오겠느냐”고 말했다. 그래도 서구는 공사를 계속해 내년 말 완공하기로 했다. 다만 전망대 같은 것을 짓지 않는 방법으로 공사비를 65억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천시와 대구시 서구 모두 이런 식으로 예산을 쓰게 된 경위가 비슷하다. 자치단체장이 치적을 남길 만한 사업을 제안하면 일부 지방의원이 반대하다가도 중앙 정부 지원금 등을 따오면 통과된다. 이천 테마공원엔 정부 예산 20억원이 들어갔고, 서구 산책로에는 39억원이 잡혀 있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치적을 쌓으려는 단체장과 견제 능력을 상실한 지방의회가 있는 한 세금 낭비는 계속될 것”이라며 “사업 기대 효과를 부풀린 지자체에 대해 국가가 지원한 돈을 회수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홍권삼(팀장)·김방현·신진호·위성욱·임명수·김윤호·김호·차상은·유명한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프리랜서 김성태·공정식 hongg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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