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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칼럼] 울림 없는 ‘빅 스몰’ 정책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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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 38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 저자인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로버트 치알디니 명예교수는 작은 실천을 강조한다. 그는 최근 공저 『설득의 심리학 완결편』에서 사소한 시도로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52가지 ‘스몰 빅(Small Big)’ 사례를 소개한다. 치알디니는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 할 때 요란한 구호보다는 조그만 변화 하나로 놀라운 힘을 발휘토록 하는 것이 ‘스몰 빅’”이라고 설명한다.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정부·지자체·기업·개인에 적용할 만한 예가 많다. 세금 독촉장과 기부금 사례가 흥미롭다. 영국 국세청이 세금 납부 독촉장에 제때 세금을 낸 시민의 숫자를 알려주는 문장 하나를 추가했더니 57%였던 납부율이 86%로 높아졌다고 한다. 또 자선모금함에 ‘기부(Donating)=돕기(Helping)’라는 글자를 적어 놓자 모금액이 19% 증가했는데, ‘Helping’ 을 ‘Loving’으로 바꿨더니 90%나 더 걷혔다는 것이다. 한 끗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스몰 빅은 일상에도 유용할 것 같다. ‘매일 운동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보다는 틈 날 때마다 걷는 게 더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정부 정책에 스몰 빅을 대입해보면 어떨까. 가슴이 답답해진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국정 개혁 과제를 비롯한 ‘빅 플랜(Big Plan)’을 추진 중이다. 내년은 총선, 그 다음해는 대선이어서 올해가 최적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 ‘빅’ 구호를 비웃듯 그 울림은 ‘스몰’에 그치고 있다. 이른바 ‘스몰 빅’의 역전, ‘빅 스몰(Big Small)’이다. 정부가 선언한 ‘부정부패와의 전면전’도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완구 총리도 담화를 통해 “깨끗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부의 모든 권한과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공언했다. 포스코발(發) 수사는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순식간에 재계·해외개발·방산 비리 등 전방위로 확산되는 양태다.

수사는 기밀성(機密性)이 중요한데 떠벌리듯 중계할 일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비리 수사는 상시적으로, 또 조용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경종의 메시지가 곳곳에 전파돼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지금처럼 요란스런 수사에 국민이 얼마나 공감할까.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정략적 표적수사’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환부를 정확히 도려내길 바란다.

4대 국정 과제 중에선 공무원연금 개혁만 성공해도 대박이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은 우리의 사명이자 팔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 팔자대로 진전되는 게 안 보인다. 공무원연금개혁 대타협기구의 활동 시한(28일)이 엿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야당은 정부안을, 여당은 야당안을 내놓으라며 ‘네 탓’ 타령이다. 구동존이(求同存異)해야 할 과제를 내팽개치고 공무원 집단의 눈치만 보고 있다. 여야의 대립각이 여전해 5월 2일 처리 기한을 맞추기는커녕 ‘쇼’만 한다는 의구심이 든다.

괜한 기우일까. ‘빅 스몰’로 끝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백지화를 보면 정말 걱정이 된다. 정부가 2년 가까이 거창하게 추진한 과업을 돌연 연기한 것은 ‘비겁 행정’의 전형이다. ‘설득·공감 정책’이 절실한 시점에 담뱃값과 연말정산 파동에 가위 눌린 정부가 헛스윙을 한 것이다. 보험료가 늘어나는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 45만 명을 설득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지역가입자 600만 세대 부담을 줄여줘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없었다. 누구 하나 책임진 이도 없다.

요란하고 거창하고 겉만 번지르한 구호에 국민은 신물 나 있다. 피부에 와 닿고, 살림에 도움이 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국가발전으로 이어질 ‘공감 정책’을 갈망한다. 말만 앞세운 ‘빅 플랜’에 그친다면 혹세무민과 뭐가 다른가.

양영유 사회에디터 yangy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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