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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사태, 북한이 핵포기 거부하는 빌미 될 수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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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 05면

마르마조프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크림반도 병합은 국제법 위반이다. 반드시 크림반도를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정동 기자
18일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1주년 기념행사. [AP=뉴시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강대국의 지정학적 충돌은 한반도에도 중대한 시사점을 준다. 1994년 부다페스트 협약으로 미국·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우크라이나에 핵 포기를 조건으로 안전 보장과 항구적 독립을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론 지켜지지 않았다. 이게 북한의 전략적 판단에 선례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겐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러시아, 크림반도 병합 1년 …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 바실리 마르마조프

21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지 1년이 됐다. 지난해 3월 16일 크림반도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러시아로의 귀속을 결정했다. 이어 러시아 정부는 21일 크림공화국을 연방으로 흡수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림반도 병합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통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러시아가 무기와 자본을 지원하는 분리주의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교전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휴전을 위해 민스크 협정을 맺었지만 총성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 18일 바실리 마르마조프(53)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를 서울 한남동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만나 현지 상황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입장을 들었다.

러시아, 2차대전 후 형성된 질서 깨트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 국제정세에 줄 영향은.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다른 나라를 침공해 영토를 병합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협약의 유효성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당시 미국·러시아와 함께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안전 보장과 항구적 독립을 약속했다. 하지만 결국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례는 북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대한 야심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했는데도 국제적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케이스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고수할 개연성이 커졌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 사례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로 인해 러시아로 망명했다. 이어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됐다. 지난 1년을 평가한다면.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와 유럽으로선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자유를 위협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러시아는 우리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였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국가를 지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전 국민이 힘을 모아 대항했고 현재도 그런 상황이다. 우리는 그 와중에 민주적인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을 선출했으며, 의회도 새로 구성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인권 존중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국가 재건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에 평화유지군 파병할 필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 유지되고 있다.
“러시아의 행위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형성된 국제 질서를 무너뜨렸다.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문명화된 다른 나라들도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결코 크림반도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로 반환될 것으로 확신한다.”

-크림반도의 현재 상황은.
“국제감시기구들에 따르면 심각한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다. 타타르인과 우크라이나인에게 대한 러시아의 차별정책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에 인권 탄압을 중단하고 국제감시기구의 현지 활동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크림반도 주민의 인권 보장이 시급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속셈이 뭐라고 생각하나.
“정확한 의도를 알긴 어렵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그의 보복정책과 제국주의를 막아야 한다. 지난 2월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분리주의 무장세력 간 교전을 중단시키기 위한 민스크 협정이 체결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이행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최근 러시아가 지원하는 무장세력이 데발체프를 공격하고 마리우풀에 포격을 가한 것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무자비한 군사 행위를 막기 위해서 국제사회가 좀 더 러시아를 압박해야 한다.”

-러시아 경제제재가 진행되고 있는데.
“서방의 제재가 효과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제재는 단지 수단일 뿐이지 전략은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러시아가 민스크 협정을 준수하도록 국제사회가 좀 더 강력한 정치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올해는 헬싱키 협정 40주년이 되는 해다. 75년 당시 소련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현재 국경을 존중하겠다’고 명시한 유럽의 안전보장 안에 대해 합의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어겼다.”

-우크라이나가 EU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번 사태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 같은데.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일부다. 우리 국민은 EU 가입을 선택했다. EU와의 협력협정도 체결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 상품을 EU 시장에서 면세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나토 이슈와 관련, 우리는 이미 94년 모든 핵무기를 포기했다. 앞서 말했듯이 부다페스트 협약을 통해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침공했을 때 미국과 영국 등 당시 협약 당사국들에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러시아도 현재 친러 국가들과 군사협정을 맺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변국들은 모두 군사적 블록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만 외톨이로 남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조만간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해결 방안은.
“지난 2월 민스크 협정에서 합의된 것은 조건 없는 휴전과 전선에서의 중화기 철수다. 우크라이나는 협정에 따라 이미 중화기를 철수시켰다. 하지만 분리주의 세력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검증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아직 분리주의 세력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동부지역에서는 분리주의 세력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데발체프는 완전히 파괴됐다. 여전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세력 확장을 위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유엔 평화유지군 등이 우크라이나에 들어와 현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

박 대통령 방문과 의원 교류 원해
-내전으로 우크라이나 경제상황이 악화됐는데.
“우선 용어를 명확히 하고 싶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내전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전은 한 나라의 국민 간에 서로 싸우는 것인데, 지금 우크라이나 상황은 러시아의 침공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전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 우리 경제는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과 전 정권의 금융정책 실패로 경제 기반이 거의 무너진 상황이다.”

-향후 국가 재건 방향은.
“우리는 ‘2020 개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제안한 것으로 유럽의 기준에 맞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EU 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안정적인 국가발전이다. 우리 정부는 62개의 개혁과제를 선정해 시행하고 있다. 부패 척결과 사법제도 개혁도 과제 중 하나다. 부패 척결을 위한 ‘반(反)부패국’이 최근 출범했다. 앞으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부패와 관련되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지난 3일에는 헌법위원회가 설립됐다. 우크라이나를 글로벌 기준에 맞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협력 증진 방안은.
“한국은 유엔과 국제적십자사 등을 통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50만 달러를 지원했다. 감사 드린다. 앞으로도 국제사회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지지와 지원을 기대한다. 더불어 우리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원하고 있다. 또 한국 국회의원들의 우크라이나 방문도 희망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지원국 모임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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