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aturday] '하늘서 떨어진 로또' 진주 운석, 그 후 1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한때 내 몸값을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그랬던 나는 지금 차가운 은행 금고에 갇힌 상태다. 그것도 비닐에 진공 포장된 상태로.

 나는 외계에서 왔다. 1년 전인 지난해 3월 나라 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진주 운석’ 1호가 바로 나다. 지난 3월 10일 경남 진주시 대곡면의 비닐하우스에서 내가 처음 발견됐고, 이어 일주일 동안 내 형제 셋이 대곡면과 미천면 일대에서 더 발견됐다. 제일 큰 건 3월 17일 농수로에서 발견된 20.9㎏짜리 4호이고, 그 다음이 나(9.4㎏)다.

 형제들과 나는 원래 한 몸이었다. 지난해 3월 9일 밤 지구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 빛을 내며 떨어지는 장면은 한국 곳곳에서 목격됐다. 일부 차량 블랙박스에도 찍혔다.

 다음날 아침 나를 발견한 것은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 강원기(58)씨였다. 나는 비닐하우스에 큼지막한 구멍을 뚫고 들어와 땅에 박힌 상태였다. 이젠 내 주인이 된 강씨는 처음 내가 군부대 불발탄인 줄 알았다. 신고를 받은 경찰 역시 군부대 폭발물 처리반과 함께 출동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폭발물이 아니라 암석”이라는 것이었다.

 암석이라니, 그렇다면 9㎏의 큼직한 돌멩이가 난데없이 어디서 날아들었을까. 이런 의문에 답을 낸 것은 주인의 딸이었다. 각지에서 유성을 목격했다는 뉴스를 바탕으로 운석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음날 나는 운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천시에 있는 해양수산부 산하 극지연구소로 보내졌다. 도난 방지를 위해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 문산 인터체인지에 진입할 때까지 경찰차가 호송했다.

 극지연구소는 내 정체를 밝혀냈다. 그 사이 진주시 세 곳에서 운석이 더 발견됐다. 우리들이 원래 한 몸에서 떨어져 나온 형제란 사실도 규명됐다. 우리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에서 떨어져 나와 우주를 떠돌다 지구의 인력에 끌려 들어왔고, 한국 수도권 상공에서 대기권에 진입한 뒤 경남 함양·산청군 인근 상공에서 폭발해 진주시 곳곳에 떨어졌다는 행적까지 파악됐다.

 주인은 나를 “하늘에서 내린 복덩이”라고 기뻐했다. 내 존재는 그렇게 가문의 경사에 그치지 않았다. 진주시가 그야말로 북새통이 됐다. 몸값이 수억원에 이른다는 얘기에 전국에서 운석을 찾으려는 사냥꾼이 몰려들었다. “하늘의 좋은 기운을 얻어가겠다”며 내가 떨어진 자리를 보여달라고 주인을 조르는 방문객이 하루 수십 명이었다. “운석이 떨어진 자리의 흙을 사겠다”는 이도 있었고, 일부는 그냥 비닐하우스에 큰 절을 올리고 돌아가기도 했다.

 언론은 연일 내 몸값 얘기를 해댔다. 가치가 g당 최대 10만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9.4㎏인 내 몸값이 9억4000만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인터넷에는 소치 겨울올림픽 메달에 사용된 운석이 g당 236만원이라는 풍설이 올라왔다. 러시아 정부가 가공비를 포함해 이만큼을 주고 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나와 형제들은 그야말로 ‘로또’로 여겨지게 됐다.

 정부에서도 우리를 사겠다고 나섰다. 태양계의 기원과 생성, 변천 과정 등 우주과학 연구에 소중한 정보를 줄 수 있고, 관광자원으로도 가치가 있어서다. 정부와 우리 주인들 간에 구매 협상은 지난해 5월 진주시청에서 처음 열렸다. 정부는 g당 1만원을 제시했다. 우리 주인들은 소치 메달을 예로 들며 “너무 금액이 낮은 것 같다”는 정도의 입장을 밝혔다. 이게 와전돼 우리 주인들이 “총 270억원을 달라고 했다”고 알려지는 바람에 주인들이 곤욕을 치렀다.

 첫 협상이 결렬된 뒤 우리는 은행 금고로 옮겨졌다. 도난당할 염려 때문이었다. 국민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여름을 넘기면서 운석사냥꾼 행렬은 끊기다시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구매 협상은 다시 열렸다. 지난해 10월 극지연구소가 “전시 관람료를 추가로 나눠주겠다”고 했으나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정부는 아직도 우리를 원하는 것 같다. ‘국가 과학·관광 자산으로서 가치가 워낙 중요해 협상을 계속하겠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승렬 행정지질연구실장)는 입장이다. 하지만 잘될지는 미지수다. 우리 주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재로선 팔 생각이 없다. 소유자들끼리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하든지 가보로 자손에게 물려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진주=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