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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윈, 첫 쿠데타 땐 민간에 정권 이양 … 2년 뒤 2차 궐기 땐 원대복귀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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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집트 나세르(1952년), 이라크 카심(58년), 태국 사리트(58년), 파키스탄 아유브 칸(58년), 라오스 콩레(60년).

 1950년대와 60년대 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의 정치사는 곧 군부 쿠데타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중동과 아시아의 쿠데타 발생 소식은 국내 신문의 주요 뉴스였다. 5·16 무렵 신생국 쿠데타 중 가장 주목받은 사례가 버마(현 미얀마)였다. 버마 육군참모총장 네 윈(1911~2002·사진) 장군은 58년 9월 ‘반공’을 명분으로 한 무혈 쿠데타에 성공했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차기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며 조기 민정 이양을 약속했다.

 60년 2월, 네 윈은 “공산화 위험이 줄었다”며 약속대로 총선거를 실시했다. 군부세력은 출마하지 않았다.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졌다. 58년 쿠데타로 정권을 내줬던 우누 전 총리가 선거에서 압승했다. 네 윈은 우누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조용히 군으로 물러났다. 쿠데타 세력이 자유선거를 거쳐 군으로 복귀한 드문 사례였다. 이로 인해 네 윈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60년 8월 그는 막사이사이상 정치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합헌정부와 민주원칙을 양심적으로 수호했다’는 이유였다. 국내 언론은 네 윈 사례를 쿠데타의 모범으로 그렸다. 이승만 정권 말기의 어지러운 국내 정치 상황과 대비시켰다. “아시아에도 이런 나라가 있다. 아시아에도 군복을 입은 시민이 있다.

네 윈 장군은 군인의 귀감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정권욕 환자들에게 교훈이 될지어다”(동아일보 1960년 3월 22일자). JP가 “박정희 소장이 버마식 군부통치 선례를 염두해 뒀을 것”이라고 짐작한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네 윈의 쿠데타는 끝난 게 아니었다. 육군참모총장 네 윈은 2년 만인 62년 3월 다시 궐기를 일으켰다. 우누 정권은 또다시 네 윈에 의해 무너졌다. 58년의 쿠데타가 똑같이 재현됐다. 군부는 “정치·경제 사정이 악화일로를 걸어 부득이하게 거사하게 됐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2차 쿠데타는 1차와 달랐다. 이번엔 ‘총선거에 의한 민정 이양’ 약속을 내놓지 않았다. 네 윈은 12년간 군사정부 수장(혁명평의회 의장)을 지냈다.

74년 군부통치를 끝내고 민선 의회에 정권을 넘겼지만 의회는 네 윈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는 81년 건강 악화를 이유로 대통령직을 사임할 때까지 장기 집권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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