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회에서 침략전쟁 정당화한 '팔굉일우' 슬로건 등장

중앙일보

입력

일본 국회에 제2차 세계대전 중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슬로건이었던 '팔굉일우(八紘一宇)'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집권 자민당의 미하라 준코(三原じゅん子·50) 참의원 의원은 1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의 질의에서 "(일본의) 건국 이래 소중히 간직해 온 가치관인 '팔굉일우'를 소개하겠다"며 일장 연설에 나섰다.

팔굉일우는 일본서기의 문언을 기반으로 전전(戰前)의 종교가 다나카 치가쿠(田中智學)가 했던 말이다.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한다'는 뜻인데,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학교 등에서 널리 쓰이던 슬로건이다. 천황제의 핵심 사싱이기도 하다.

미하라 의원은 "팔굉일우의 이념 아래 전세계가 하나의 가족처럼 서로 돕는 경제를 운용토록 하는 숭고한 정치적 합의문서 같은 걸 아베 총리가 세계에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東京)신문은 17일자에서 "(미하라 의원이) 팔굉일우를 예찬했다"고 보도했다. 미하라가 자신의 '팔굉일우' 발언에 대한 소감을 요구하자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팔굉일우는 전쟁 전 노래 안에도 여럿 있었고 주류적 사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근데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 (전후에 태어난) 미하라 의원 세대에 있다는 데 솔직히 놀랐다"고 말했다.

뚜렷한 일 정부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비켜간 답변이었지만 '주류적 사고의 하나'란 답을 통해 아직까지 일본 사회 안에 '팔굉일우'의 향수가 남아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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