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세계줄기세포허브 어떻게 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줄기세포은행 설립은 애당초 성급한 일이었다. 한국 생명과학에 던져진 덫 또는 함정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럴드 섀튼의 행보가 이러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허 지분 등 개인적 이익을 제외하더라도 그의 연출 배후가 됐을 네 가지 정도의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을 부추겨 줄기세포은행을 설립하게 하고 자극을 줌으로써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안티 정서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둘째, 한국 줄기세포 연구의 노하우를 밀착해 살펴보고, 그 기술도 어느 정도 확보했으리라. 셋째, 그런 후 그럴듯한 이유로 한국과 결별함으로써 자기는 손을 씻고, 윤리적 책임을 몽땅 한국 생명과학계에 뒤집어씌운다. 넷째, 줄기세포은행과 당분간 손을 끊더라도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 많은 줄기세포를 생산해 은행에 저축해 놓았다 한들 자신을 비롯해 미국 의료생명산업계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줄기세포를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와 기초과학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차 그 값비싼 생명과학의 가장 큰 잠재시장 역시 미국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을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줄기세포은행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한국은 윤리적 오명만 뒤집어쓰게 될 뿐 실질적 이익은 막대한 잠재시장과 완제품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다른 나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간배아 줄기세포라는 원광석을 생산하는 원산지로 전락하고, 치료법과 거대한 시장을 가진 초강대국 생명산업의 하부구조로 종속되는 또 하나의 세계시장 지배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경제성장 논리에 따라 환경파괴(생명파괴)를 담보로 한 공해산업(반생명산업)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줄기세포은행이 선진국의 생명윤리 세탁 장소로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 시나리오가 상상과 기우에 불과하기를 진정 바라고, 또 섀튼 박사의 과학자로서의 정직성을 믿고 싶다. 그러나 해외 언론은 황우석 박사를 "개장에 갇힌 격이 됐다"고 비꼬고 있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함정을 피해갈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과학자들은 이미 생명과학의 루비콘강을 건너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복제 시대를 열어 버렸다. 그들이 성급하게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는 그들만의 책임이라고 내버려 둘 수 없게 됐다. 더 이상 어떤 종류의 덫에도 걸리지 않도록 시급히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들이 회개하고 호된 윤리 세례식을 치렀으니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 모두에게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기존의 글로벌 윤리 스탠더드는 인간 배아복제 시대의 우리에게는 이미 낡은 것이다. 그 눈높이와 기준에 맞추려 하기보다 지금부터 우리 스스로 새로운 윤리기준을 세워 세계를 설득해야 한다. 인류발전의 두 축인 과학과 윤리를 동시에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에 한국 생명과학은 인문학, 특히 종교와 깊은 대화를 해야 한다. 서양의 제한적 생명윤리를 답습할 것이 아니라 동양의 생명사상에 근거한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의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생명과학의 한류 폭풍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으니, 이제는 생명윤리의 한류 미풍으로 감싸줄 필요가 있다.

김흡영 강남대 교수·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