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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트 "순찰차 기다린 3~4분 정말 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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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마크 리퍼트(42·사진) 주한 미 대사가 지난 10일 저녁 한국 정부·여당 및 학계 인사들을 초청해 한·미 무역 현안 등을 논하며 저녁 식사를 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퇴원한 당일이다. 만찬은 방한 중이던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를 환영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피습 사건 전에 약속된 것이었다. 만찬에 초대받은 인사들은 청와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및 안종범 경제수석, 외교부 조태열 2차관,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 박진(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전 국회 외통위원장,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등이다.

 참석자들이 피격 당시 상황을 묻자 리퍼트 대사는 “다른 쪽을 보고 있었는데, 뒤쪽에서 기척을 느꼈다. 누군가 달려드는 것을 감지한 순간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또 “공격 뒤 2차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 배운 대로 행동한 것”이라고 했다. 리퍼트 대사는 네이비실(미 해군 특수부대) 소속으로 아프간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경동맥 쪽을 다쳤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목 쪽에는 상처가 없었다. 그것까지 확인하고 행사장을 나왔다”고 돌아봤다. 이어 “행사장이 대사관과 가까운 거리라서 차가 바로 앞에 없었다. 누가 순찰차를 불러주기까지 3~4분 정도를 기다렸는데,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고 서 있던 그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종훈 의원은 “리퍼트 대사가 범인 김기종씨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북한을 몇 번 다녀온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리퍼트 대사는 지난 5일 피습 후 받은 2시간가량의 경찰 조사에선 범인 김기종씨에 대해 “법대로 처벌해 달라”고 말했다고 수사본부 관계자가 밝혔다.

 만찬 도중 리퍼트 대사는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박진 전 위원장에게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도 물었다. 박 전 위원장은 “한·미 FTA의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위원장이 커틀러 부대표에게 “한국이 TPP 가입 의사를 밝혔는데 미국이 좀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 하자 커틀러 부대표는 “워싱턴에 가서 그런 한국의 여론과 분위기를 전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만찬이 당연히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사관 쪽에서 변동이 없다고 연락이 와서 좀 놀랐다”며 “리퍼트 대사는 양복 차림으로 손님들을 맞았고, 내내 쾌활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만찬은 오후 6시에 시작돼 8시15분쯤 끝났다. 주변에서 중간중간 “그만 들어가 쉬시라”고 했지만, 리퍼트 대사는 “괜찮다”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유지혜·권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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