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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한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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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94년4월, 미풍이 살랑이는 화창한 봄 날씨. 한강하류 행주산성 밑 선착장에는 2백여명의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기다리고 있다. 얼어붙었던 한강이 녹고 새싹이 돋으면서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뱃놀이를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는 L씨와, 그 가족도 있었다. L씨는 12년 전 서울시가 한강 종합개발 사업을 펼 때 측량기사로 직접 참여했던 사람.
그때는 38세였으나 이제는 50줄에 들어섰다.
이윽고 미끈한 모습의 유람선 한척이 선착장에 닿는다. 이 배는 민자로 운영되고 있는 한강 관광 주식회사가 최근 국내 S조선으로부터 15억원에 인수한 초호화판 유람선.
승선인원 3백명에 양식·한식식당, 호화 주점, 연회장과 연주무대까지 마련돼있다.
관광객들이 배에 오르자 우리의 전통민요 『한강수 타령』과 3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장년가수 조용필의『영원한 한강』, 정재은의『한강의 밤』이 은은히 울려 퍼진다.
배가 10분쯤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오른쪽을 보니 안양천하구 아래쪽에 또 하나의 거대한 건물과 시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안양 하수처리장-. 반포·영등포·안양천의 하수를 모아서 깨끗하게 정수하는 물 처리 공정이다.
L씨는 11년전 일이 생각났다. 측량을 하기 위해 바로 이 부근의 강물에 들어갔다가 몸에 두드러기가 나 병원에 1주일간 입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물고기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유유히 놀고있다.
유람선 옆으로 자가용 쾌속보트가 쏜살같이 내달린다.
여의도와 강변을 따라 곳곳에 만들어진 체육공원에서는 학생·시민들이 축구·배구·테니스·농구를 하고 푸른 잔디밭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뒹굴며 일광욕을 즐긴다.
저수로에 가득 차 흐르는 푸른 강물 위에는 젊은 남녀들이 보트놀이를 하고 제1한강교와 여의도 사이에는 수상스키장이 개장돼 한창 성업중이다.
저수로 호안에서는 강태공들이 물고기와 씨름을 하고. 최근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한강 물은 BOD(생물학적 산소 요구량)가 2PPM. 물고기를 잡아 날것으로 먹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유람선이 제1한강교·동작대교· 제3한강교· 금호대교를 지나는 동안에도 강양안은 푸른 물과 푸른 숲의 연속이다. 다리도 10년 사이에 12개나 더 놓여져 이러다가는 한강이 모두 다리로 복개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멀리 광나루 쪽에서 간고의 세월을 두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부시게 맑다. L씨는 한강이 이제 개발사업 12년만에 그 옛날의 푸르름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안수한(서울대교수·공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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