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억 적자의 해운업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심각한 불황에 빠진 해운업계의 통폐합 작업이 막바지 고비에 이르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대형산업의 통폐합이 손쉽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면 무리일 것이므로 우리는 이 작업이 끈기와 인내로 큰 부작용 없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리고있다.
통폐합이라는 극단적 산업재편까지 불러온 해운업계의 부실과 불황의 심각성은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두드러져온 터이지만 작금의 현실은 더 이상 그것을 방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통폐합의 원칙이 제시된 이후 주거래은행들에 보고된 69개 국내 선사들의 부채규모가 2조원을 넘어선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심각성은 이미 증빙된 셈이다. 이는 자기자본 총 규모의 7·5배에 이르는 규모이며 지난 한해 적자만도 1천억원을 넘어섰다. 이런 사태가 지속된다면 해운업계의 연쇄도산은 너무도 자명해진다.
정부의 통폐합 원칙이 제시된 이후 비교적 경영이 안정된 대형 3개 선사들은 이미 통합작업을 마무리지었고 나머지 대선사들을 중심으로 한 40여개의 해운사들이 합병문제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일부 미온적인 선사들에 대해 2월말까지 통합작업을 마무리하도록 권고하고 자율개편이 불가능할 경우는 행정권을 발동할 뜻을 비치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강제적인 행정력에 의해 이 작업이 결말지어지기 이전에 업계의 자율재편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해운업계의 통폐합 과정이 순탄하지 못한데는 무엇보다도 자산·부채의 평가에서 수많은 장애가 가로놓여있기 때문이다. 해운사들의 누적 부채가 워낙 방대한데다 순 자본이 마이너스인 회사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자산평가 작업이 쉽게 이루어질 전망은 희박하다. 더우기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많은 회사들이 장기 불황의 와중에서 자금운영에 난맥을 보여 자산운영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특히 해외지점의 현지금융이나 대리점부채 등의 보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상당한 시간을 요할 것이다.
때문에 이번 작업은 특정 시한에 매달려 서두르기보다는 주거래 은행중심으로 우선 충분한 자산·부채 실태파악을 완료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업계의 자율적 개편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업재편이 시한에 쫓겨 물리적으로 이루어지거나 단순히 선복량 중심으로 정리되는 것보다는 국제 경쟁력을 기준으로 선사의 균형 있는 분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내외의 해운수요를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화물확보 능력을 충분히 고려해야하며 부족한 인적 자원의 분포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해운업만큼 국제경쟁에 민감하게 노출되어 있는 산업도 드물기 때문에 모든 노력은 국제경쟁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단순한 물리적 통폐합이 아닌, 해운산업 국제화의 방향으로 완결되어야 하며 이는 해운경영의 국제화와 해운관계자들의 감각을 국제화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