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편역시대"를 맞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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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출판계가 본격적인 편역시대를 맞고 있다. 이를 테면 「중국현대사의 구조」(민두기편·청람간) 「종속의 극복」 (강홍철편저·풀빛간) 「사회사적 사상사」 (홍은중편역·전예원간) 「어떻게 사회과학을 할 것인가」 (천야영일·고가영삼랑 편저·한마당편집실역·한마당간) 「인텔리겐차와 지식인」 (「A·겔라」편·지영범외역·학민사간)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 편역의 러시를 이루고 있다. 특히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 대형(신국판)문고들이 편역의 주종을 이룰 전망이다.
편역의 양식은 주제별로 묶어 번역해내는게 일반적인 이미 외국에서 편저한 것을 번역해내는 경우도 눈에 띈다.
출판인들은 이러한 편역현상을 번역시대와 저술시대 사이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물론 번역시대가 이미 지나갔다거나 이제 저술시대만이 도래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선진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번역작업을 본격적으로 출발시켜야 한다는 학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번역출판이 갖는 취약점에 있다. 독자들은 번역물에 싫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감각에 안맞는 생경한 번역에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도무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만날 때면 억지스럽고 지루하기만 하다. 이제 우리 독자들도 외래문물의 일방적 수용은 지양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띠고 있다. 구체적이며 자생적인 입장에서 선별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편역시대를 연출하고 있다.
또 한가지, 독자들의 세분화. 전문화 추세가 이에 작용하고 있다.
독자들의 관심은 급속하게 나눠지고 있으며 또 보다 깊은 전문지식을 요구한다.
바쁜 세상에 자기와 직접 관련도 없는 방대한 정보량에선 부담감만 느낀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요령있게 정리내주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편역이 여기에 호응하고 있다.
가격의 문제점도 무시할 수 없다. 방대한 양의 원역일 경우 비쌀 수 밖에 없지만 필요한 부분만을 모아 편역해낼 경우 싼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최근 2천원 안팎의 가격으로 펴내고 있는 새로운 대형문고의 대량출현도 이와 같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편 출판계는 아직 국내집필력으로 독자들의 다양한 지적욕구를 채워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학문연구의 축적이 미흡한 실정에서 각 분야별로 국내저술서를 때맞춰 엮어내기란 어려운 상태다.
따라서 당분간 각종 편역물들이 주로 이시대 독자의 정보욕구를 채워줄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출판사들 기발한 기획력에 기대를 걸어볼 일이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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