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컴퓨터영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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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수은주가 영하16도로 곤두박질한 수원시서둔동 농촌진흥청벌판. 작물시험장내의 30평 남짓한 인공기상실은 광도 3만룩스, 영상 24도, 5월 봄이다. 파릇파릇한 벼들이 컴퓨터가 조절하는 온도·습도·광도로 늦봄의 따슴함속에 계절을 잊고 있다.
『삑-』 갑자기 컴퓨터가 경보음을 울린다. 인공기상실의 책임연구원 노영덕박사(36)가 즉시 컴퓨터실로 달려간다.
『온도가 프로그램된 것보다4도 떨어졌음』 컴퓨터화면에 이상내용이 표시된다.
노박사는 보일러실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하고 바로 잡는다.
이 실험실은 우리나라 벼품종의 가장 큰 약점인 냉해를 이겨내는 강인한 벼를 개량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영농의 3대요건인 품종·재배기술·기상조건등을 컴퓨터의 힘으로 조절·개량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매일매일 변화하는 기상조건을 실제와 근사하게 조절, 한겨울에도 봄을 만들어낸다.
수원시이목동 농촌진흥성원예시험장의 채소복합환경조절온실. 50평짜리 유리온실안에는 빨갛게 익은 토마토가 탐스럽다.
온실안에는 복합환경조절기가 장치돼 온실밖에 설치된 일사량감응기가 감지하는 광량에 따라 온도·습도·탄산가스의 양등을 자동조절한다. 즉 광합성이 부진한 흐린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토마토의 광합성을 최대화하도록 환경이 조절되는 것이다.
이용범연구사(32)가 하는 일은 토마토의 성장과정을 기록, 관찰하고 복합환경조절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것뿐.
햇볕이 따뜻한 하오2시. 온실내의 온도가 30도를 넘어서면 보일러의 작동이 멈추고 온실위쪽에 난 천장이 자동으로 일제히 열려 환기가 된다. 또 해가 지면 역시 자동으로 온실안의 비닐커튼이 닫혀 2중 온실효과를 내 토마토를 보호한다. 이 영농법은 아직 적자이지만 생산성은 재래식에 비해 50% 나 높다. 영농의 기계화시대를 넘어선 자동화시대의 개막이다.
서울신림4동1464의41 콩나물재배엎체인 자연식품(사장 최용식·41)의 20평남짓한 재배실.
새벽 2시30분쯤 일어난 사장 최씨는 콩나물재배시루 12개에 각각 연결된 자동살수기의 타이머를 전날보다 3∼5분씩 늘려 조정한다. 재배이틀째인 1번시루는 10분으로, 재배3일째인 2번시루는 15분….
예전에는 새벽2시에 일어나 펌프로 물을 뽑아올려 1시간이상 일일이 각시루에 물을 부어주어야 했다. 6시간 간격으로 매일 4차례 이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동살수기가 모든 일을 대신해낸다. 타이머만 맞춰주면 자동살수기가 그시간만큼 하루4번씩 콩나물에 물을 준다.
최씨가 하는 일은 재배8일째 되는 날 콩나물을 가지런히 간추려 시장에 내놓는 것뿐이다.
최씨는 현재 서울시내 7백여 콩나물재배업자중 30여명이 자동살수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컴퓨터를 이용한 영농자동화는 아직 걸음마단계. 일반농가에서 작물재배에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는 없으며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이용한 자동화장치를 일부에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협소한 농지, 노년기에 접어든 토양, 제한된 강우량등을 극복하고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전천후 영농과 품종의 혁명이 절실한 실정이다. 영농의 공장화추세도 영농기술혁신의 자극제가 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박상근박사(51·채소2과장)는 『컴퓨터를 이용해 자연환경에 관계없이 광도. 온도. 습도. 탄산가스농도. 배지등 재배환경을 자동으로 조절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영농단위가 커지고 컴퓨터의 가격이 싸지면 본격적인 컴퓨터영농시대를 맞게 될것』으로 내다봤다.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팀은 2년전부터 컴퓨터프로그램에 필요한 작물생장의 모델화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 해12월에는 수시로 변하는 일사량·온도·습도·광합성량·풍속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농업기상 종합기록장치를 도입, 본격적으로 컴퓨터영농연구에 들어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최소의 노동력으로 최대의 수확을 얻는 무인자동농장시대의 꿈이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덕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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