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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겁주기'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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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부시는 지하드의 목표가 중동 내에서 미국과 서방의 영향을 끝장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민주와 평화를 대표하고, 그들의 목표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부시는 말한다. "이들은 한 나라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해 무슬림 대중을 모으고, 나아가 지역 내 모든 온건 정부를 전복해 스페인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급진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려 한다." "그들의 의무는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이스라엘을 파괴하며, 유럽을 위협하고, 미국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테러리스트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도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는 것일까. 내 생각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하드의 목표를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환상과 터무니없는 야심의 일람표 정도로 부를 것이다. 만일 부시 대통령이 자신이 말한 것을 진지하게 믿는다면, 그는 수개월 전부터 국방부에 길고 힘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병력 충원도 했어야 한다.

미국이 새로운 세계적 전쟁을 벌여야 한다면 그 전선은 스페인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뻗칠 것이다. 또 새로운 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병력이 미국 동맹국들로부터 충원될 것 같지는 않다.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 지도자들 가운데 이 '전쟁'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반군과의 성공적이지 못한 전쟁에 대한 국내 비판에 맞서기 위해 미국인들을 겁주려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시가 고의적으로 거짓말하고 있는 것일까. 거짓말로 시작한 말은 결국 그 거짓말 때문에 실패한다. 그리고 이것이 부시 정권을 덮칠 운명같이 보인다.

딕 체니 부통령은 22일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과 관련, 거짓말을 하면서 국가를 이끌고 있는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공격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 '이라크와 알카에다 간에 연계가 있다' 등의 정보를 토대로 이뤄진 것이란 주장이다. 체니는 이 같은 정보가 사전에 틀린 것임을 알고도 이 정보를 왜곡.조작해 미국 여론을 호도한 게 아니냐는 일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에 대해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는 뼈 있는 말을 던졌다. "국가 지도자가 정보를 왜곡.조작하지 않았다면 2002년 가을과 2003년 봄에 걸쳐 백악관을 에워쌌던 사람들이 정보를 왜곡.조작했을 수 있다. 부통령과 그의 참모진이 그들 중의 일부일 수 있다."

지난주 퓨 리서치 센터는 국제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 조사를 발표했다. 여론 조사는 과거의 잘못을 고칠 수는 없다. 그러나 판단과 희망사항을 반영한다. 조사에선 미국인의 42%가 "미국은 미국 문제만 신경 써야 한다. 다른 나라 일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수치는 3년 전 같은 질문에 비해 두 배 높아진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미국 장래에 대해 낙관하는 이유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유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