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교육의「숙제」가 풀렸다.|서울대 신입생 특별시험 계기로 본「객관식」의 허점|이일해(서울대 자연대 수학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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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교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연과학계의 모든 초년생들은 대개 6학점에 해당하는 수학(공과대학생은 12학점)을 필수로 이수하면 그만 이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2학년에 가서도 그 학과의 특성에 따라 더 전문적인 수학강좌의 개설을 요구하는 학과가 매년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학과의 3, 4학년생들이 수강하고 있는 전공과목강의실에서 여타계열의 학생, 특히 사회과학계열의 학생들까지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와 아울러 금번 서울대학교에서는 기초과목 특별시험이라는 것을 실시하였는데 도하 각 신문에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은 우리사회가 우리들의 2세를 위한 수학교육을 매우 중요시하는 까닭이라 생각된다. 그 내용인즉 금년도 서울대학교 신입생 중에 영어와 수학에 있어서 이미 우리대학의 1학년 1학기과정을 비교적 우수하게 이해하고 있는 학생이 있으면 이 학생들에게는 그 과목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하여 소정의 학점을 주어 조기에 졸업이 가능하도록 해주자는 것이었다.
이에 관여한 수학과 교수의 한사람으로서 시험을 실시한 후에 느끼는 소감을 몇 마디 말해 볼까한다.
시험의 공고와 동시에 수학과에서는 금년도 1학년 1학기에 가르치게 되어있는 교과내용과 참고서적 몇 가지를 같이 공고하였다. 출제는 4명의 교수가 모여 신중히 하였다.
모두가 주관식 문제인 것은 물론 증명문제도 있었다.
지금까지 출제한 문제들 보다 결코 어렵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하간 이 시험에 합격하려면 고등학교에서 아무리 수학을 잘하였다 해도 공고한 내용을 공부하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응시자 중에는 교내서점에서 위에 게시한 참고서적을 구입해간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고 듣고있다.
일부에서는 시험결과가 기대한 만큼 좋지 못하다고 실망하는 모양이나 사실 우리 수학과의 교수들은 금년도의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그 첫째로는 우선 대학에서 배우게되는 내용을 공부하여야 하는데 처음 실시하는 일이므로 평소 고등학교시절부터 그것을 위하여 미리 준비하였을 리 없고, 또 시험을 공고한날로부터 약 20일 뒤에 보았으니 준비기간이 매우 짧아서 공부를 많이 못하였을 것은 당연하다.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할 것이라는 두 번째 이유로는 지금까지와 같이 학력고사에 대비하는 식의 학습방법으로는 도저히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는 주관식 문제들이 출제되었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사고(이론)의 전개가 수학의 본질인데 기계적으로, 또는 중간과정의 논리전개가 사리에 맞는가의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지 않고 결과만을 유도하려는 태도는 대학에 와서도 상당히 오래 지속된다고 보여진다.
「아인슈타인」이 얻어낸 결과는 물리학적 사실이지만 언젠가 그의 논문중의 하나를 본 일이 있는데 그것은 수식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그는 물리학자인 동시에 수학자였다고 주장하여도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 일이 있다.
그는 남에게서 전문적인 수학교육을 받은 바가 없다.
그럼에도 그 유명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뛰어난 수학적 두뇌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학생 제군은 어떤 정리의 증명과정이나 문제의 풀이 속에 이해가 가지 않는 곳이 있으면 절대로 그대로 넘어가 버려서는 안 된다. 혼자서 하나의 문제에 매달려 며칠씩 노력을 하노라면 지금까지 자기가 모르고 있었던 다른 것도 자연히 알게되며 자기도 모르게 실력이 향상되게 마련이다.
아울러 국민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수학교육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이러한 방향으로 지도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또 정책을 세우는 분들은 그분들대로 수학의 이러한 본질을 고려하여 수학교육정책을 세우기를 희망한다. 소위 말하는 객관식문제를 푸는 훈련만으로는 진정한 수학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그 증거로 이번 시험과 같이 자기가 배우지 않은 범위에서 문제가 나왔다 하더라도 이것을 자기가 이미 알고있는 지식을 써서 어떻게 해서 풀어보려는 노력의 흔적 같은 것이 극소수밖에 없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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