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꿈… 소외 계층에 희망 심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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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신정3동의 반지하 셋방에 방송인 김미화(41)씨가 공기청정기를 사들고 나타났다. 얼마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 재산(1500만원)을 기부한 김춘희(80) 할머니 댁을 인사차 찾은 것이다. 김씨는 7일엔 한국여성재단이 '일본의 가정친화기업 연구'를 주제로 연 포럼에, 8일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사무실 이전식에 참석했다. 다음주엔 장애인의 날(20일)과 지구의 날(22일) 행사에도 나갈 참이다.

"원래 날 풀리면 더 바빠져요. 벌써 5월 말까지 행사 스케줄이 잡혀 있네요." 김씨가 내미는 수첩을 보니 과연 날짜마다 일정이 빽빽하다.

남을 웃기는 게 본업인 그가 이렇게 '진지한' 일로 분주한 것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맡은 직함들 때문이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녹색연합.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그가 '홍보대사''운영위원''기획위원' 등을 맡아 일하고 있는 단체가 수십개에 달한다. "왜 그리 오지랖이 넓으냐고 핀잔주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좋은 일에 도움이 된다면 시간 내는 게 뭐 대수인가요?"

그렇다고 김씨를 각종 행사에 얼굴만 달랑 내미는 '홍보대사 전문 연예인'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남을 돕는 것도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늦깎이로 대학(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올 2월 정확히 4년 만에 졸업했다.

"교수님들이 '연예인이면 6년은 기본으로 다녀야하는 것 아니냐'며 놀리세요. 방송 때문에 몇번씩 휴학할까 하다가 이를 악물고 버텼죠."

힘들게 다닌 대학에서 뭘 배웠느냐고 물었다. "'일을 하는 사람만 도움받을 자격이 있다'는 미국식 복지이론을 주로 공부했죠. 하지만 제가 여기저기서 보고들은 국내 현실은 달라요. 장애인.노인 등 무조건 도와줘야하는 계층도 분명히 있거든요." 앞으로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게 그의 숙제로 남았다고 했다.

2003년 10월 MBC FM의 '2003년 가을,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맡아 '사상 첫 개그맨 출신 시사 프로 진행자'로 화제가 됐던 김씨는 그 외에 'TV는 사랑을 싣고''희망풍경' 등 주로 교양 프로를 진행하고 있다. 이달 말부터는 'TV 책을 말하다'의 MC도 맡는다.

"코미디와는 영 결별한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코미디를 잘 하기 위한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시사 프로를 진행한 체험을 토대로 정치 코미디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의 궁극적인 꿈은 자기 이름을 딴 토크쇼에서 사람 사는 얘기를 진하게 펼쳐보는 것이란다.

"쇼를 통해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꾸준히 불러일으키는 오프라 윈프리(미국의 유명 방송인) 아시죠? 굴곡 많은 개인사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한국의 오프라'가 돼보려고요."

글=신예리 기자<shin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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