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함께 사는 삶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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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전의 흔한 모습 중 하나는 가방 받아주기였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서 있으려면 앉아 있는 이들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다. 내미는 손도, 맡기는 손도 주저함이 없었다. 요즘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몇 번의 머쓱함을 경험한 후 내밀기도, 맡기기도 어렵게 느껴진다. 간섭하지도, 간섭 받지도 않으려는 서로 간의 암묵적 합의가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소통(疏通)보다는 너와 나의 경계가 우선이 된 것이다. 경로석의 제도화도 그런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규범으로 해결 가능했던 문제가 개인의 권리와 부닥치게 되면서 나름의 해결책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렌트(Arendt)는 대중사회에서 원자화된 유목적(nomadic) 삶이 관계와 결속의 힘을 상실하게 하여 결국 경쟁과 자기중심적 이익 추구가 지배하는 무규범의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물론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 개인에 대한 배려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공동체적 생활 방식이 가진 다양한 한계가 있어왔다. 고향에 대한 동류의식이 지역감정으로, 관계 중심의 공동체 의식이 패거리주의로, 그리고 같은 지역이나 직업의 소속의식이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차이의 인정을 위해, 아울러 갈등의 치유를 위해 이제는 변화된 환경 속에 함께하는 삶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기다. 소통을 통한 이해를 기반으로 개인에 대해 강요된 희생이 당연시되지 않고 자발적인 참여와 결속이 이뤄질 수 있는 상생의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사이버 문화의 재정립이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사이버 공간은 현대인들의 다양한 소통이 나타나고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 계속 만들어져 가고 있는 담론의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중요성을 띠고 있는 곳이다. 더욱이 미래 사회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사회화의 공간이자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상호작용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는가에 따라 규범의 통용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고, 법에 의한 강제적 제도화가 나타날 수도 있는 공간인 것이다. 때문에 우선 나의 주장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그리고 우리 모두에 대한 존중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한동안 모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였던 "됐거든!"에서 느껴지는 소통의 단절이 줄어들어야 한다. 함께 소통하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논쟁의 와중에 접하게 된 두 가지 소식에서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상반된 느낌이 들었다. 하나는 방송 출연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던 사람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다만 같은 이름을 가졌음에도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오해에 의해 초토화된 미니 홈피의 주인공이다. 서로 간 최소한의 소통도 없었고, 피해자의 일방적인 상처만 남았다. 다른 하나는 이미 난자 채취 과정의 어려움과 고통이 잘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헌신적 제공 의사가 답지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너와 나에서 벗어나 '우리'의 미래를 위한 마음에서 말이다.

배영 숭실대 교수.사회학